본문 바로가기

국립중앙박물관

관음보살 지장보살 아미타불도로 보는 불교회화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 ① 어두운 굴 안 기암괴석 위에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이 앉아 있다. 관음보살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용왕(아래)과 용녀(왼쪽 위)가 경배를 표하고 있다. 쌍 상투를 튼 선재동자는 작은 암석 위에서 합장하고 서 있다. 관음보살을 흠모하는듯한 모습이다. 에서는 관음보살과 선재동자의 만남만 나오기 때문에, 용왕과 용녀가 관음보살과 함께 등장하는 모습은 불교 경전이 아니라 설화에서 기인한 그림으로 보인다. 그림 하단 중앙에는 화기(그림에 대한 기록)가 남아 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까지 경상도 지방에서 활동했던 화승(그림 그리는 승려) 제한이 그렸다고 전한다.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 ② 관음보살은 중생을 재난으로부터 구제해주는 보살이다. 고통에 허덕이는 .. 더보기
공예의 왕국, 그 도자기 색의 비밀은? 우리나라가 '공예의 왕국'이라는 사실, 특히 어떤 부분에서 그리 말할 수 있을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삼국시대의 금속공예, 고려시대의 상감청자와 나전칠기 그리고 조선시대의 목공예와 백자를 나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미술사를 빛낸 걸작들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공예의 꽃'은 도자기라고 하는 의견이 많은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를 처음으로 만든 것은 중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 기술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하여 세계 도자(도기와 자기) 역사에 분명한 발자취를 남기지 않았는가? 고려 시대에 들어와 장인들은 청자에 상감 무늬를 넣은 이른바 상감청자를 개발해 중국 청자와는 다른 도자기의 지평을 열었고, 조선 시대에 와서는 분청사기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내었다. 백자의 경우도 그 시작은 .. 더보기
일본으로 팔려갔다 다시 돌아온 세한도의 기구한 사연 세한도는 알고 보면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지니지 않았는가? 추사 김정희(1786~1856)에게 직접 선물로 받은 이상적이 죽은 후 제자였던 김병선과 그 아들 김준학에게로 차례로 그 소유권이 넘겨지게 되는 운명의 세한도! 이어 휘문고 설립자인 민영휘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의 아들 민규식은 구한말 경성제대 교수이자 추사 연구가인 일본인, 후지즈카 치카시(1879~1948)에게 그만 양도하고 만다(돈이 필요해서였던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어찌...). 태평양전쟁의 상황이 심각해지자 후지즈카 치카시는 본국인 일본으로 세한도를 가지고 건너가게 된다(형식상으로 문화재 불법반출은 아닌 셈이다).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그런 세한도가 어떻게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 국보로까지 지정(1974. 12.31.)되기에 이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