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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천문관측대 첨성대 높이가 약 9.17미터로 전체적인 모습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병 모양이다. 기단, 몸체, 정자석의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맨 아래 지면에는 사각형 모양으로 쌓은 2단의 기단이 있다(1단은 얼핏 보이지 않는데 자세히 보면 지면의 흙에 가려진 것을 알 수 있다). 그 기단 위에 둥글게 둥글게 돌을 쌓은 부분이 몸체이다. 몸체 위에 한자의 정자 모양 돌이 정자석이다. 이 첨성대의 몸체를 옆에서 보면 우아한 곡선미를 그리는데, 신라인들이 이렇게 쌓은 이유는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또한 제일 상단의 정자석까지 어떻게 올라갔을까? 추정하건대 먼저 남쪽으로 나있는 입구 자 모양의 창(창문)에 사다리를 걸친다. 사다리를 딛고서 올라간 다음 창(창문) 안으로 들어간다. 다시 그 안에서 내부 사다리를 통해.. 더보기
신라금관의 숨은 의미 지금으로부터 약 2000여 년 전 박혁거세가 세운 나라인 신라는 4세기 후반에 이르러 국가의 기본 틀을 갖추게 되었다. 삼국 가운데 가장 작은 나라였지만 결국엔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게 되는데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진흥왕, 무열왕, 문무왕 같은 왕들의 노력으로? 신라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도시, 경주에 가면 마치 작은 산처럼 생긴 고분이 눈에 들어오는데 고분엔 중요한 유물도 많이 묻혀있었다. 고분이란 옛날에 만들어진 무덤을 말함인데 그 고분의 주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있을 때에는 '릉'이나 '묘'로 이름을 붙이고, 반대로 정확히 모를 때에는 '총'이라 하여 대개 그 고분이 발견될 때 나온 유물을 관련시켜 이름을 붙이게 된다. 금관이 발견되어 '금관총', 천마도가 발견되어 '천마총'이.. 더보기
수원화성, 성곽문화의 전성시대를 열다 우리의 문화유산 중 그 의미가 특별한 것으로는 뭐가 있을까? 우리 민족은 5천 년 역사에서 3천 번에 이르는 외침을 받았다 하는데, 이런 외침에서 선봉을 섰던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성과 성곽. 삼국시대엔 밀려드는 중국 세력을 고구려의 성들이 막아냈고, 도성을 둘러싼 성곽들은 도읍지를 지켰던 것이다. 북한산성, 금정산성 등 우리나라 전국의 곳곳에는 성곽이 많이 남아 있는데, 높은 산에는 산성이 평지에는 해미읍성, 낙안읍성 등 읍성들이 남아 있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는 성곽의 나라가 아닌가? 경기도 수원시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수원화성! 우리나라 성 중에서 이 수원화성을 아름답기로 첫 손에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 때에 만들어진 이 성은 우리나라 성과 외국 성의 장점만을 골라 .. 더보기
조선왕릉 서오릉의 비밀 조선, 조선시대~ 그러니까 1392년 역성혁명으로 개국한 후 1910년 한일합방 때까지 조선왕조 518년 동안 27명의 임금이 있었고, 또 사후 추존왕까지 합치면 모두 44명의 왕이 있었다. 그 왕비들까지 고려하면 더욱 엄청난 수의 조선왕릉이 있는 셈이겠다. 동구릉, 서오릉, 서삼릉 등 조선시대의 왕릉은 대부분 도읍지였던 한양 근처에 모여있는 것이 특징인데 여기엔 어떤 사연과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일까? 태조 이성계는 개국 후 국가운영 계획을 세우면서 왕들의 무덤을 한양에서 100리 안팎의 거리에 그것도 무리를 지어 만들라고 했는데, 이를 족분제도라 일컫는다. 추정컨대 고려 시대의 왕릉이 개성 부근의 산악지대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왕릉에 다녀오는 일에 불편함이 많았고, 또 그 능을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 더보기
부소산성, 백제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가다 잃어버린 왕국, 백제! 그 백제의 문화유산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박물관이라면, 백제 사람들이 남겨놓은 자취는 지금의 부여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바닷길을 따라 외국과 자유로이 왕래했던 개방적인 자세와 자연을 닮아 비교적 온화했을 기질 등을 살펴보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약 700년의 역사를 어떻게 마감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멸망의 순간도 더듬어 볼 수 있을 것이고. 서울 광화문에서 167km, 자가용으로 2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곳 충남 부여로 떠나 본다. 능산리 고분군. 백제의 왕과 왕족의 무덤인 이곳은 부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약 3.5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백제 무왕이 선화공주를 위해 조성했다는 궁남지를 거쳐 직접 걸어서 가기로 한다. 느리게 걷기가 어울리는 곳이 또 부여 아닐까? 이곳 .. 더보기
마을을 지키는 민간신앙, 장승 옛날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마을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 생각했을까? 마을 안은 언제나 성스럽고 조화로운 세계고 이에 비해 마을 바깥은 불안하고 무질서한 세계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 자신들이 사는 마을이 언제나 신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선택된 땅이라는 확고한 믿음이라도 있었던 걸까? 아니면 예측할 수 없는 불행과 자연재해로부터 자신의 삶과 터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신들을 만들어 낸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사람들은 과연 언제부터 하늘을 우러르며 신의 보살핌을 찾게 되었을까?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소박한 기원이 담긴 것을 민간신앙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우리 조상들의 삶속에서 뿌리 내려온 이 민간신앙엔 어떤 것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까? 사람들은 자신의 삶 터 주변에서 흔히 볼.. 더보기
일본으로 팔려갔다 다시 돌아온 세한도의 기구한 사연 세한도는 알고 보면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지니지 않았는가? 추사 김정희(1786~1856)에게 직접 선물로 받은 이상적이 죽은 후 제자였던 김병선과 그 아들 김준학에게로 차례로 그 소유권이 넘겨지게 되는 운명의 세한도! 이어 휘문고 설립자인 민영휘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의 아들 민규식은 구한말 경성제대 교수이자 추사 연구가인 일본인, 후지즈카 치카시(1879~1948)에게 그만 양도하고 만다(돈이 필요해서였던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어찌...). 태평양전쟁의 상황이 심각해지자 후지즈카 치카시는 본국인 일본으로 세한도를 가지고 건너가게 된다(형식상으로 문화재 불법반출은 아닌 셈이다).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그런 세한도가 어떻게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 국보로까지 지정(1974. 12.31.)되기에 이르.. 더보기
언택트시대 흥미로운 불상기행 서산마애여래삼존상을 찾아서 서산 마애 삼존불상(마애여래 삼존상)은 흔히 '백제의 미소'로 이름나 있다. 둥글고 넓으면서도 생동감이 넘치고 때로는 귀엽기까지 한 얼굴에 가득하니 머금고 있는 미소라~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정말 흔치 않은 불상이다. 무릇 불상의 모습이란 또 시대를 반영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 당시 백제인들은 무엇을 담고 싶었을까? 어떠한 심정으로 이 천진난만하고 온화한 그러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마애불을 완성하였는지 정말 궁금해진다. 코로나 일상에 갑갑한 요즈음~ 비대면 비접촉의 언택트 시대를 무료하지 않게 보내는 방법? 잃어버린 왕국, 백제의 찬란한 미소가 흘러넘치는 서산으로 달려가 본다. 불상이란 열반한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인데, 불교가 처음 전파되던 시기에는 불상없이 탑이나 금강좌(보리수나무 아래 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