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공예의 왕국, 그 도자기 색의 비밀은? 우리나라가 '공예의 왕국'이라는 사실, 특히 어떤 부분에서 그리 말할 수 있을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삼국시대의 금속공예, 고려시대의 상감청자와 나전칠기 그리고 조선시대의 목공예와 백자를 나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미술사를 빛낸 걸작들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공예의 꽃'은 도자기라고 하는 의견이 많은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를 처음으로 만든 것은 중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 기술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하여 세계 도자(도기와 자기) 역사에 분명한 발자취를 남기지 않았는가? 고려 시대에 들어와 장인들은 청자에 상감 무늬를 넣은 이른바 상감청자를 개발해 중국 청자와는 다른 도자기의 지평을 열었고, 조선 시대에 와서는 분청사기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내었다. 백자의 경우도 그 시작은 .. 더보기
목탑에서 석탑으로, 탑의 변천 우리나라의 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발전하였다. 경주 분황사의 모전 석탑은 1층 탑신부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감실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는 목탑의 특징적 요소를 석탑에다 적용한 사례임을 알 수 있다. 석탑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 나라는 백제였다. 전북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의 기술이 점차 발전을 거듭하여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 그리고 불국사 석가탑에서 그 세련미가 절정을 이루게 된다. 우리나라의 탑은 또 다른 나라에 비해 작고 소박한 편이지만 당시 장인들이 발휘한 기발한 상상력은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오늘은 시대를 거치면서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화를 거듭해온 우리나라 탑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한다. 여왕이 만든 탑, 분황사 모전 석탑. 경북 경주시의 분황사는 '꽃처럼 아.. 더보기
성곽 중의 성곽, 산성 북한산성 남한산성 등 우리나라 성곽에는 어떤 특징들이 있는 것인가? 우선 궁궐이 있는 도읍지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도성이 있고, 지방 행정 관청이 있는 고을에 쌓아 행정과 군사적 기능을 갖춘 읍성이 있다. 또 외적을 막기 위해서 국경 부근에 산과 산을 연결하여 쌓은 장성도 있지요.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우리나라 성을 대표하는 것은 산성이겠다. 오늘은 역사적으로 치열했던 전쟁 이야기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산성을 찾아 떠나가 보도록 한다. 백제가 처음 쌓은 북한산성.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백제는 132년 석축으로 북한산성을 맨처음 쌓았다. 475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위례성을 함락하자 백제는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게 된다. 주인이 바뀌는 셈이다. 553년 이번에는 신라 진흥왕이 북한산성을 차지하고 북한산 순수.. 더보기
저항의 역사 강화도 강화도는 한강물이 서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그런데 강화도는 제주도나 거제도처럼 절해고도의 느낌을 주는 곳은 아니다. 서울과 인천에서 비교적 근거리이고, 육지와 섬 사이가 불과 200~30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아 마치 강을 건너는 느낌 정도이다. 더군다나 강화대교나 초지대교가 건설되면서 연육화된 지도 꽤 되었다. 그럼에도 강화도가 마치 아득한 섬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다사다난했던 또 파란만장했던 지난 역사를 온몸으로 감내해왔던 자취들이 아직도 여기저기 진하게 배어있기 때문이리라. 역사 속에서 강화도는 고려와 조선의 도읍이었던 개경과 한양으로 들어오는 입구여서 도읍으로 밀고 들어오는 수많은 외적의 침입을 숙명적으로 받아야 했다. 바다를 그리고 물을.. 더보기
국보 제1호 숭례문과 보물 제1호 흥인지문 국보 제1호와 보물 제1호를 만나다. 조선왕조 500년 도읍지 한양, 그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한양도성(서울성곽)에는 모두 8개의 문이 있었다. 4대 문인 숭례문, 흥인지문, 돈의문, 숙정문과 그 사이의 4 소문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 혜화문이 그것이다. 한양도성의 성문과 성곽은 외적의 침입을 막고 궁궐과 국가의 주요 시설물을 지키기 위함이었는데, 그 축성과정은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작업을 감당할 인력을 동원하기도, 물자나 재화를 조달하기도 무엇하나 쉬운 일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옛 고려의 도읍지인 개경에서 한양(지금의 서울)으로 도읍지를 옮긴다. 그리고 새로운 왕조, 새로운 국가의 위상에 걸맞은 한양도성을 짓게 된다(1396년). 조선의 새 도읍지 서울의 옛.. 더보기
전설의 사찰, 개태사 부석사 상원사 이야기 우리나라의 절, 사찰엔 오랜 역사만큼 그 속에 담긴 사연도 참 많다. 사찰이 지어질 당시의 숨은 창건 내력부터 고승들의 신비한 이야기까지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 같은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또한 사찰에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문화유산도 꽤 많은데, 거기에도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설처럼 많이 남아 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타임슬립' 영화의 판타지로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요즘 같이 오락가락 장맛비 사이로 무더위가 지속되는 한여름엔 전설 속의 사찰들을 찾아서 그 고색창연한 스토리에 흠뻑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시원하고 건강한 여름 나기에 분명 보탬이 되지 싶다. 오늘 포스팅은 전설 속의 사찰 방문기가 되겠다. 수많은 사찰 중에서 세 곳을 우선 추려보았는데, 다름 아닌 개태사, 상원.. 더보기
조선의 법궁, 경복궁 조선의 첫 궁궐.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1335~1408)는 왕이 되고 나서, 새로운 궁궐을 어디에 지으면 좋을지 고심이 많았다. 여러 곳을 견주어 보다가 정도전 등의 권유로 결국 한양으로 결정하게 된다.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왕이 된 만큼 백성들에겐 권위도 내세우고 싶었을 것이고, 자연스레 고려의 도읍을 벗어나 새로운 집도 갖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1395년 태조는 경복궁을 새로이 짓고 한양 입성에 성공하게 된다. 처음에는 390여 칸 규모로 근정전과 강녕전 등의 건물만 있었으나, 경회루도 짓고 차츰 전각의 수를 늘려 나갔다. 그러다 임진왜란(1592~1598) 때 불이 나는 바람에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다. 재건축 시도가 없지 않았겠으나 워낙 덩치가 큰 일인지라 200여 년간 방치되게 된다. .. 더보기
신라 천 년의 무덤 공원, 대릉원 신라의 옛 수도 경주만큼 신비스러움이 감도는 곳도 없을 것이다. 시내 한 복판에 동산처럼 우뚝 솟은 왕릉이 여기저기에서 눈길을 잡아 끈다. 타임 슬립으로 금방이라도 시공간을 초월하여 천 년 전 경주로 돌아갈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드니 말이다. 실로 천 년이란 시간의 흠을 두고 옛사람과 현대인이 교감을 나누는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신라 왕릉은 초기에 대부분 도읍지인 경주 한복판에 조성되었다. 후기로 가면서 풍수지리설에 따라 명당을 찾아 차츰 외곽으로 자지를 잡으면서 다양한 곳에 흩어지게 되었다. 신라 천년의 역사 속에 모두 56명(평균 재위 기간 17년)의 왕이 존재했으니, 무덤의 수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각 무덤들의 주인이 정확히 어떤 왕인지를 알 수가 없다란 사실이다. 신라 왕들의 무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