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저항의 역사 강화도 강화도는 한강물이 서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그런데 강화도는 제주도나 거제도처럼 절해고도의 느낌을 주는 곳은 아니다. 서울과 인천에서 비교적 근거리이고, 육지와 섬 사이가 불과 200~30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아 마치 강을 건너는 느낌 정도이다. 더군다나 강화대교나 초지대교가 건설되면서 연육화된 지도 꽤 되었다. 그럼에도 강화도가 마치 아득한 섬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다사다난했던 또 파란만장했던 지난 역사를 온몸으로 감내해왔던 자취들이 아직도 여기저기 진하게 배어있기 때문이리라. 역사 속에서 강화도는 고려와 조선의 도읍이었던 개경과 한양으로 들어오는 입구여서 도읍으로 밀고 들어오는 수많은 외적의 침입을 숙명적으로 받아야 했다. 바다를 그리고 물을.. 더보기
국보 제1호 숭례문과 보물 제1호 흥인지문 국보 제1호와 보물 제1호를 만나다. 조선왕조 500년 도읍지 한양, 그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한양도성(서울성곽)에는 모두 8개의 문이 있었다. 4대 문인 숭례문, 흥인지문, 돈의문, 숙정문과 그 사이의 4 소문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 혜화문이 그것이다. 한양도성의 성문과 성곽은 외적의 침입을 막고 궁궐과 국가의 주요 시설물을 지키기 위함이었는데, 그 축성과정은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작업을 감당할 인력을 동원하기도, 물자나 재화를 조달하기도 무엇하나 쉬운 일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옛 고려의 도읍지인 개경에서 한양(지금의 서울)으로 도읍지를 옮긴다. 그리고 새로운 왕조, 새로운 국가의 위상에 걸맞은 한양도성을 짓게 된다(1396년). 조선의 새 도읍지 서울의 옛.. 더보기
전설의 사찰, 개태사 부석사 상원사 이야기 우리나라의 절, 사찰엔 오랜 역사만큼 그 속에 담긴 사연도 참 많다. 사찰이 지어질 당시의 숨은 창건 내력부터 고승들의 신비한 이야기까지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 같은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또한 사찰에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문화유산도 꽤 많은데, 거기에도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설처럼 많이 남아 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타임슬립' 영화의 판타지로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요즘 같이 오락가락 장맛비 사이로 무더위가 지속되는 한여름엔 전설 속의 사찰들을 찾아서 그 고색창연한 스토리에 흠뻑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시원하고 건강한 여름 나기에 분명 보탬이 되지 싶다. 오늘 포스팅은 전설 속의 사찰 방문기가 되겠다. 수많은 사찰 중에서 세 곳을 우선 추려보았는데, 다름 아닌 개태사, 상원.. 더보기
조선의 법궁, 경복궁 조선의 첫 궁궐.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1335~1408)는 왕이 되고 나서, 새로운 궁궐을 어디에 지으면 좋을지 고심이 많았다. 여러 곳을 견주어 보다가 정도전 등의 권유로 결국 한양으로 결정하게 된다.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왕이 된 만큼 백성들에겐 권위도 내세우고 싶었을 것이고, 자연스레 고려의 도읍을 벗어나 새로운 집도 갖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1395년 태조는 경복궁을 새로이 짓고 한양 입성에 성공하게 된다. 처음에는 390여 칸 규모로 근정전과 강녕전 등의 건물만 있었으나, 경회루도 짓고 차츰 전각의 수를 늘려 나갔다. 그러다 임진왜란(1592~1598) 때 불이 나는 바람에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다. 재건축 시도가 없지 않았겠으나 워낙 덩치가 큰 일인지라 200여 년간 방치되게 된다. .. 더보기
신라 천 년의 무덤 공원, 대릉원 신라의 옛 수도 경주만큼 신비스러움이 감도는 곳도 없을 것이다. 시내 한 복판에 동산처럼 우뚝 솟은 왕릉이 여기저기에서 눈길을 잡아 끈다. 타임 슬립으로 금방이라도 시공간을 초월하여 천 년 전 경주로 돌아갈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드니 말이다. 실로 천 년이란 시간의 흠을 두고 옛사람과 현대인이 교감을 나누는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신라 왕릉은 초기에 대부분 도읍지인 경주 한복판에 조성되었다. 후기로 가면서 풍수지리설에 따라 명당을 찾아 차츰 외곽으로 자지를 잡으면서 다양한 곳에 흩어지게 되었다. 신라 천년의 역사 속에 모두 56명(평균 재위 기간 17년)의 왕이 존재했으니, 무덤의 수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각 무덤들의 주인이 정확히 어떤 왕인지를 알 수가 없다란 사실이다. 신라 왕들의 무덤.. 더보기
신라의 천문관측대 첨성대 높이가 약 9.17미터로 전체적인 모습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병 모양이다. 기단, 몸체, 정자석의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맨 아래 지면에는 사각형 모양으로 쌓은 2단의 기단이 있다(1단은 얼핏 보이지 않는데 자세히 보면 지면의 흙에 가려진 것을 알 수 있다). 그 기단 위에 둥글게 둥글게 돌을 쌓은 부분이 몸체이다. 몸체 위에 한자의 정자 모양 돌이 정자석이다. 이 첨성대의 몸체를 옆에서 보면 우아한 곡선미를 그리는데, 신라인들이 이렇게 쌓은 이유는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또한 제일 상단의 정자석까지 어떻게 올라갔을까? 추정하건대 먼저 남쪽으로 나있는 입구 자 모양의 창(창문)에 사다리를 걸친다. 사다리를 딛고서 올라간 다음 창(창문) 안으로 들어간다. 다시 그 안에서 내부 사다리를 통해.. 더보기
신라금관의 숨은 의미 지금으로부터 약 2000여 년 전 박혁거세가 세운 나라인 신라는 4세기 후반에 이르러 국가의 기본 틀을 갖추게 되었다. 삼국 가운데 가장 작은 나라였지만 결국엔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게 되는데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진흥왕, 무열왕, 문무왕 같은 왕들의 노력으로? 신라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도시, 경주에 가면 마치 작은 산처럼 생긴 고분이 눈에 들어오는데 고분엔 중요한 유물도 많이 묻혀있었다. 고분이란 옛날에 만들어진 무덤을 말함인데 그 고분의 주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있을 때에는 '릉'이나 '묘'로 이름을 붙이고, 반대로 정확히 모를 때에는 '총'이라 하여 대개 그 고분이 발견될 때 나온 유물을 관련시켜 이름을 붙이게 된다. 금관이 발견되어 '금관총', 천마도가 발견되어 '천마총'이.. 더보기
수원화성, 성곽문화의 전성시대를 열다 우리의 문화유산 중 그 의미가 특별한 것으로는 뭐가 있을까? 우리 민족은 5천 년 역사에서 3천 번에 이르는 외침을 받았다 하는데, 이런 외침에서 선봉을 섰던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성과 성곽. 삼국시대엔 밀려드는 중국 세력을 고구려의 성들이 막아냈고, 도성을 둘러싼 성곽들은 도읍지를 지켰던 것이다. 북한산성, 금정산성 등 우리나라 전국의 곳곳에는 성곽이 많이 남아 있는데, 높은 산에는 산성이 평지에는 해미읍성, 낙안읍성 등 읍성들이 남아 있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는 성곽의 나라가 아닌가? 경기도 수원시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수원화성! 우리나라 성 중에서 이 수원화성을 아름답기로 첫 손에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 때에 만들어진 이 성은 우리나라 성과 외국 성의 장점만을 골라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