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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울림, 성덕대왕 신종 종로 보신각에서 울려 퍼지는 제야의 종소리를 한 번쯤 들어보셨을 터이다. 깊은 산 정적의 사찰에서 새벽 예불이나 정기 법회 때 나지막이 울리는 종소리를 들어본 적 있으신가? 사람의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 준다. 속세의 번뇌를 싹 날려주는 듯한 그 소리에 잠시 빠져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우리나라 문화재 중에 아주 근사한 종이 있다. 다른 나라 아닌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소리'로 선정한 성덕대왕 신종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기분 좋은 여행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종 중에서 가장 큰 종으로, 처음에 '봉덕사 종'이라고 불렸으나, 아기를 시주해 넣었다는 전설때문에 아기 울음소리를 본떠 흔히 '에밀레 종'이라고 불린다. 전체 높이는 3.75미터이고 그 무게는 18.9톤이나 나간다. .. 더보기
겸재 정선미술관 후기, 겸재 정선의 생애와 창작활동 조선의 선비 화가 겸재 정선은 1740년부터 1745년까지 양천현령(현재의 강서구청장 격)으로 재임하면서 , 등 숱한 걸작을 남겼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으로 지난 2009년 4월, 서울 강서구에서는 겸재 정선의 업적을 기리고 진경산수화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조선시대 양천현아지 인근에 겸재 정선 미술관을 개관한 바 있다. 장마철인 요즈음 멀리 가기엔 부담스럽고 가까운 곳에서 겸재 정선의 생애와 창작활동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싶다. 9호선 양천항교역 1번 출구에서 도보로 찾아갈 수 있다. 겸재 정선의 연보. 숙종 2년인 1676년 현재 서울의 종로구 청운동 선비 집안에서 태어났다. 1711년 36세 때 처음으로 금강산을 기행하고 을 남기게 되는데, 이때부터 그림에 대한 평가를 주변으로부터 받게 된다. .. 더보기
고인돌은 과연 누구의, 누구를 위한 무덤이었나? 고인돌은 크고 넓적한 바위를 큰 돌 몇 개로 받쳐놓은, 역사시대 이전인 선사시대의 무덤을 말함이다. '고여 있는 돌', '고여 놓은 돌'이라는 의미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한자어로는 '지석묘'라고 하며, 이 '지석' 역시 '뚜껑돌을 고이는 받침돌'이라는 뜻이다. 고인돌을 만드는 데 가장 필요한 재료는 역시 커다란 돌이다. 특별한 기계나 장치도 없었던 그 옛날 선사 시대엔 도대체 어떻게 그리 큰 돌을 구해다 옮겨서 고인돌을 만들었는지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중 하나이겠다. 고인돌의 뚜껑돌은 자연 암석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큰 바위에서 일부를 떼어내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렇게 구한 돌을 지렛대 등을 이용해서 혹은 사람의 힘으로 끌거나 해서 운반했을 것이다. 전라북도 진안 여의 곡 주변에선 약 2.. 더보기
주인을 알 수 있는 무덤, 무령왕릉 경주나 부여 등 삼국시대의 옛 도읍지에 가면 지금도 그 시대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옛 왕들의 무덤은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다만 안타까운 점이라면 대부분의 무덤이 그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다란 사실이다. 무덤의 실제 주인공을 알면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고,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인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충남 공주 송산리 고분군의 무령왕릉은 특별한 무덤이 아닐 수 없겠다. 옛 유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유일한 무덤. 백제의 옛 서울이었던 공주와 부여 지역에는 왕들의 무덤이 여럿 남아 있고, 대부분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 무덤이 대개 출입구가 있는 굴의 형태를 하고 있어서 입구만 발견하면 무덤 안으로 쉽게 드나들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 더보기
김홍도의 풍속화 이야기 미인도. 지난 2008년에 개봉한 영화 제목이다. 신윤복과 김홍도를 다룬 픽션 영화인데, 신윤복이 여성으로 등장하고 김홍도와의 러브 라인까지 등장하는 바람에 꽤나 충격적이었다. 제대로 된 기록도 없고 사망 시기도 명확하지 않은 두 사람의 일생에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한 연출이 나은 해프닝 내지는 에피소드 정도로 치부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김홍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김홍도(1745~)는 18세기 중반에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조선 후기의 화가이다. 그는 풍속화의 대가로도 유명하지만 초상화, 산수화, 불교 그림 등 많은 분야에서 아주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여 예닐곱 살 때 벌써 당대 유명 화가 강세황(1712~1791)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김홍도의 산수화는 강세.. 더보기
공예의 왕국, 그 도자기 색의 비밀은? 우리나라가 '공예의 왕국'이라는 사실, 특히 어떤 부분에서 그리 말할 수 있을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삼국시대의 금속공예, 고려시대의 상감청자와 나전칠기 그리고 조선시대의 목공예와 백자를 나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미술사를 빛낸 걸작들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공예의 꽃'은 도자기라고 하는 의견이 많은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를 처음으로 만든 것은 중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 기술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하여 세계 도자(도기와 자기) 역사에 분명한 발자취를 남기지 않았는가? 고려 시대에 들어와 장인들은 청자에 상감 무늬를 넣은 이른바 상감청자를 개발해 중국 청자와는 다른 도자기의 지평을 열었고, 조선 시대에 와서는 분청사기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내었다. 백자의 경우도 그 시작은 .. 더보기
목탑에서 석탑으로, 탑의 변천 우리나라의 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발전하였다. 경주 분황사의 모전 석탑은 1층 탑신부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감실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는 목탑의 특징적 요소를 석탑에다 적용한 사례임을 알 수 있다. 석탑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 나라는 백제였다. 전북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의 기술이 점차 발전을 거듭하여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 그리고 불국사 석가탑에서 그 세련미가 절정을 이루게 된다. 우리나라의 탑은 또 다른 나라에 비해 작고 소박한 편이지만 당시 장인들이 발휘한 기발한 상상력은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오늘은 시대를 거치면서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화를 거듭해온 우리나라 탑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한다. 여왕이 만든 탑, 분황사 모전 석탑. 경북 경주시의 분황사는 '꽃처럼 아.. 더보기
성곽 중의 성곽, 산성 북한산성 남한산성 등 우리나라 성곽에는 어떤 특징들이 있는 것인가? 우선 궁궐이 있는 도읍지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도성이 있고, 지방 행정 관청이 있는 고을에 쌓아 행정과 군사적 기능을 갖춘 읍성이 있다. 또 외적을 막기 위해서 국경 부근에 산과 산을 연결하여 쌓은 장성도 있지요.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우리나라 성을 대표하는 것은 산성이겠다. 오늘은 역사적으로 치열했던 전쟁 이야기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산성을 찾아 떠나가 보도록 한다. 백제가 처음 쌓은 북한산성.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백제는 132년 석축으로 북한산성을 맨처음 쌓았다. 475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위례성을 함락하자 백제는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게 된다. 주인이 바뀌는 셈이다. 553년 이번에는 신라 진흥왕이 북한산성을 차지하고 북한산 순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