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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복례문에서 즐기는 여행의 맛 안동 여행 계획하고 있는가? 하회마을에서 자동차로 십 여분 거리에 있는 안동 병산서원은 유네스코에서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한 곳이다. 지난 2019년 7월의 일이다. 유네스코에서도 인정한 병산서원의 아름다움과 서원으로서의 가치는 또 무엇일까? 오늘은 안동 여행으로 떠나 보도록 한다. 사진 속 제일 앞 건물은 병산서원의 정문 격인 복례문이다. 논어의 '극기복례'에서 따온 말이다. 나를 이겨내어 예로 돌아간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말하는 '예'는 당시 기준으로는 각자의 처지나 신분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도 있겠으나 현재에 와서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맡은 바 직무를 제대로 잘 수행한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서원이 조선의 사립학교라고 한다면 '복례문'의 현판은 이 문을 들어오는 순간 모든 어려움을 떨쳐내.. 더보기
종묘와 사직단 그리고 참성단과 환구단, 나라의 번영을 기원하다 제사를 지낸다는 건 무엇을 말함인가? 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한 집안의 제사라 함은 정해진 날짜에 후손들이 혹은 남겨진 가족들이 모여서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음식으로 상차림을 하고서 돌아가신 분께 절을 올리는 간단한 행위를 말함이다. 물론 고인을 추모하는 것에 더해 명복을 빌고 또 자신들의 앞날에 복을 내려주실 것을 기도하는 소망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국가에 있어 제사의 의미는 무엇이고 또 어떠한 기원이 있는 것인가? 오늘은 나라의 제사에 대해 고찰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여러분은 어떤 곳을 제일 먼저 떠올리시려는지? 조선시대에는 돌아가신 왕과 나라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국가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했다. 때문에 제사를 지내는 장소인 종묘와 사직단은 조선왕조의 역사와 전통을 상.. 더보기
관음보살 지장보살 아미타불도로 보는 불교회화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 ① 어두운 굴 안 기암괴석 위에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이 앉아 있다. 관음보살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용왕(아래)과 용녀(왼쪽 위)가 경배를 표하고 있다. 쌍 상투를 튼 선재동자는 작은 암석 위에서 합장하고 서 있다. 관음보살을 흠모하는듯한 모습이다. 에서는 관음보살과 선재동자의 만남만 나오기 때문에, 용왕과 용녀가 관음보살과 함께 등장하는 모습은 불교 경전이 아니라 설화에서 기인한 그림으로 보인다. 그림 하단 중앙에는 화기(그림에 대한 기록)가 남아 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까지 경상도 지방에서 활동했던 화승(그림 그리는 승려) 제한이 그렸다고 전한다.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 ② 관음보살은 중생을 재난으로부터 구제해주는 보살이다. 고통에 허덕이는 .. 더보기
가장 아름다운 울림, 성덕대왕 신종 종로 보신각에서 울려 퍼지는 제야의 종소리를 한 번쯤 들어보셨을 터이다. 깊은 산 정적의 사찰에서 새벽 예불이나 정기 법회 때 나지막이 울리는 종소리를 들어본 적 있으신가? 사람의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 준다. 속세의 번뇌를 싹 날려주는 듯한 그 소리에 잠시 빠져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우리나라 문화재 중에 아주 근사한 종이 있다. 다른 나라 아닌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소리'로 선정한 성덕대왕 신종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기분 좋은 여행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종 중에서 가장 큰 종으로, 처음에 '봉덕사 종'이라고 불렸으나, 아기를 시주해 넣었다는 전설때문에 아기 울음소리를 본떠 흔히 '에밀레 종'이라고 불린다. 전체 높이는 3.75미터이고 그 무게는 18.9톤이나 나간다. .. 더보기
겸재 정선미술관 후기, 겸재 정선의 생애와 창작활동 조선의 선비 화가 겸재 정선은 1740년부터 1745년까지 양천현령(현재의 강서구청장 격)으로 재임하면서 , 등 숱한 걸작을 남겼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으로 지난 2009년 4월, 서울 강서구에서는 겸재 정선의 업적을 기리고 진경산수화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조선시대 양천현아지 인근에 겸재 정선 미술관을 개관한 바 있다. 장마철인 요즈음 멀리 가기엔 부담스럽고 가까운 곳에서 겸재 정선의 생애와 창작활동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싶다. 9호선 양천항교역 1번 출구에서 도보로 찾아갈 수 있다. 겸재 정선의 연보. 숙종 2년인 1676년 현재 서울의 종로구 청운동 선비 집안에서 태어났다. 1711년 36세 때 처음으로 금강산을 기행하고 을 남기게 되는데, 이때부터 그림에 대한 평가를 주변으로부터 받게 된다. .. 더보기
고인돌은 과연 누구의, 누구를 위한 무덤이었나? 고인돌은 크고 넓적한 바위를 큰 돌 몇 개로 받쳐놓은, 역사시대 이전인 선사시대의 무덤을 말함이다. '고여 있는 돌', '고여 놓은 돌'이라는 의미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한자어로는 '지석묘'라고 하며, 이 '지석' 역시 '뚜껑돌을 고이는 받침돌'이라는 뜻이다. 고인돌을 만드는 데 가장 필요한 재료는 역시 커다란 돌이다. 특별한 기계나 장치도 없었던 그 옛날 선사 시대엔 도대체 어떻게 그리 큰 돌을 구해다 옮겨서 고인돌을 만들었는지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중 하나이겠다. 고인돌의 뚜껑돌은 자연 암석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큰 바위에서 일부를 떼어내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렇게 구한 돌을 지렛대 등을 이용해서 혹은 사람의 힘으로 끌거나 해서 운반했을 것이다. 전라북도 진안 여의 곡 주변에선 약 2.. 더보기
주인을 알 수 있는 무덤, 무령왕릉 경주나 부여 등 삼국시대의 옛 도읍지에 가면 지금도 그 시대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옛 왕들의 무덤은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다만 안타까운 점이라면 대부분의 무덤이 그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다란 사실이다. 무덤의 실제 주인공을 알면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고,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인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충남 공주 송산리 고분군의 무령왕릉은 특별한 무덤이 아닐 수 없겠다. 옛 유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유일한 무덤. 백제의 옛 서울이었던 공주와 부여 지역에는 왕들의 무덤이 여럿 남아 있고, 대부분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 무덤이 대개 출입구가 있는 굴의 형태를 하고 있어서 입구만 발견하면 무덤 안으로 쉽게 드나들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 더보기
김홍도의 풍속화 이야기 미인도. 지난 2008년에 개봉한 영화 제목이다. 신윤복과 김홍도를 다룬 픽션 영화인데, 신윤복이 여성으로 등장하고 김홍도와의 러브 라인까지 등장하는 바람에 꽤나 충격적이었다. 제대로 된 기록도 없고 사망 시기도 명확하지 않은 두 사람의 일생에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한 연출이 나은 해프닝 내지는 에피소드 정도로 치부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김홍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김홍도(1745~)는 18세기 중반에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조선 후기의 화가이다. 그는 풍속화의 대가로도 유명하지만 초상화, 산수화, 불교 그림 등 많은 분야에서 아주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여 예닐곱 살 때 벌써 당대 유명 화가 강세황(1712~1791)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김홍도의 산수화는 강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