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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수원화성, 성곽문화의 전성시대를 열다

우리의 문화유산 중 그 의미가 특별한 것으로는 뭐가 있을까? 우리 민족은 5천 년 역사에서 3천 번에 이르는 외침을 받았다 하는데, 이런 외침에서 선봉을 섰던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성과 성곽. 삼국시대엔 밀려드는 중국 세력을 고구려의 성들이 막아냈고, 도성을 둘러싼 성곽들은 도읍지를 지켰던 것이다. 북한산성, 금정산성 등 우리나라 전국의 곳곳에는 성곽이 많이 남아 있는데, 높은 산에는 산성이 평지에는 해미읍성, 낙안읍성 등 읍성들이 남아 있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는 성곽의 나라가 아닌가? 경기도 수원시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수원화성! 우리나라 성 중에서 이 수원화성을 아름답기로 첫 손에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 때에 만들어진 이 성은 우리나라 성과 외국 성의 장점만을 골라 한양 도성에 버금갈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 정조는 뒤주 속에서 운명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과 가까운 수원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여 장차 도읍을 옮길 결심을 하며 성을 쌓았다. 그러나 1800년 6월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 계획은 무산되고 만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파손되는 비운도 맞았지만, 축조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세계기록유산 <화성성역 의궤>에 의거하여, 1975년부터 보수, 복원이 이루어져 왔다. 세월은 흘러 정조 사후 약 200년 만인 1997년 화성은 그 우수성을 높이 평가받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데, 정조의 꿈은 또 다른 결실을 맺은 셈 아닌가? 우리나라 성곽 건축 사상 독보적인 면모를 자랑하는 수원화성을 제대로 알아보는 시간여행을 떠나보도록 하자.

(좌)화성장대, (우)서노대(다연발 활인 쇠뇌 쏘는 곳)

1) 행궁. 화성 안에 있는 궁궐을 말함인데, 행궁이란 왕이 전란을 피해 머무르거나 휴양 삼아 지방 나들이를 할 때 머물던 임시 궁궐이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에 참배하러 갈 때는 바로 이곳에서 머물렀다.
2) 서장대. 화성에서 가장 높은 팔달산 정상에 있는 총지휘 본부이다. 이곳에서는 40킬로미터 안의 모든 동정을 살필 수 있다. 2층의 누각(화성장대)으로 되어 있으며, 큰 기둥에 깃발을 내걸어 명령 신호로 삼았다. 서장대 아래에는 적에게 보이지 않는 비밀 통로인 서암문이 존재한다.
3) 서북공심돈. 성벽보다 높이 솟은 망루인데 속이 텅 비어 공심돈이라 부른다. 벽돌을 촘촘히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지붕을 얹어 안전하게 적을 감시하고 방어할 수 있는 시설로 수원화성에만 있는 형식이다. 축조 당시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고, 건축학적으로도 멋진 전경을 보여 주고 있어 보물 제1710호로 지정되어 있다.   
4) 장안문. 화성의 북쪽 대문으로 사실상이 정문 역할을 수행했다. 그것은 한양에서 온 왕이 화성에 들어올 때 처음 지나는 문이기 때문이다.

(좌)공심돈, (우)암문

5) 북동포루. 포루는 '치'와 같이 성벽 밖으로 튀어나오게 짓고 지붕을 얹었다. 이 속에 중화기류를 배치하여 적을 공격하도록 만든 것인데, 특히 북동포루의 지붕은 마치 반으로 잘라 놓은 것처럼 보인다.
6) 동장대. 화성에는 두 개의 장대가 있는데 그중에 동장대는 군사들을 훈련하고 지휘하던 사령부와 같은 곳이다. 연무대라 부르기도 한다.
7) 봉돈. 불빛과 연기를 신호로 비상사태를 알리는 통신 수단이었다. 모두 다섯 개의 커다란 굴뚝으로 이루어졌는데,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길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봉돈 한쪽에는 화덕과 온돌방이 있어 근무자가 쉴 수도 있다.
8) 팔달문. 화성의 남쪽 대문으로 무지개 모양의 문 위에 2층짜리 문루가 있으며, 앞쪽에 반달 모양의 옹성을 설치했다. 옹성이란 성 밖으로 한 겹 더 성벽을 쌓아서 성문을 이중으로 지키기 위한 시설이다. 아름다운 정자와 연못(용연)이 어우러진 방화수류정도 있다.

수원화성의 총구

한편 화성은 실학자인 정약용이 설계에 참여해 더욱 유명해진 성인데, 정약용은 화성 건축에 사용할 거중기와 녹로 같은 기계를 설계했다고 전해진다. 화성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은 위에서 언급한 <화성성역의궤>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책에 따르면 동원된 기술자가 1,280명, 사용한 벽돌이 69만 5천 장이나 된다. 부서진 성벽을 원래대로 보존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 책자의 덕분 아닐까 싶다. 화성의 정문이 북문인 장안문이라고 했는데, 장안이라 함은 곧 도성이니 성의 규모나 대문의 크기가 제법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장안문의 2층 문루 바깥쪽 판벽에는 무서운 짐승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적군이 공격하다가 이 그림을 보면 움찔할 정도이다. 특히 코 부분에는 구멍을 뚫어 총구멍으로 쓰도록 했다. 옹성 위에는 다섯 개의 물구멍이 있어서, 적군이 성에 불을 지르면 구멍으로 물을 흘려보내 불을 끌 수 있도록도 했다. 화성에는 북문과 남문을 비롯한 4개의 대문, 2개의 수문, 4개의 암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밀 통로인 암문은 전쟁이 일어나면 이 문으로 성에서 필요한 무기와 식량 등을 운반하고, 적에게 포위당했을 때에는 구원병을 요청하거나 적을 기습할 때 이용할 목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화성은 전쟁을 겪은 적은 없다. 이상으로 간단하게나마 화성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찾아가 즐길 일만 남았는데, 우아하고 장엄한 건축의 걸작인 수원화성을 어떻게 둘러보면 좋을까? 일단은 길이 5.7km의 수원화성 성곽을 따라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으니 천천히 걸어보길 권한다. 화성어차로 한 바퀴 둘러보는 것도 편한 방법이 되겠다. 특히 화홍문과 그 인근의 방화수류정, 용연은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곳이니 반드시 찾아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