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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조선왕릉 서오릉의 비밀

조선, 조선시대~ 그러니까 1392년 역성혁명으로 개국한 후 1910년 한일합방 때까지 조선왕조 518년 동안 27명의 임금이 있었고, 또 사후 추존왕까지 합치면 모두 44명의 왕이 있었다. 그 왕비들까지 고려하면 더욱 엄청난 수의 조선왕릉이 있는 셈이겠다. 동구릉, 서오릉, 서삼릉 등 조선시대의 왕릉은 대부분 도읍지였던 한양 근처에 모여있는 것이 특징인데 여기엔 어떤 사연과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일까? 태조 이성계는 개국 후 국가운영 계획을 세우면서 왕들의 무덤을 한양에서 100리 안팎의 거리에 그것도 무리를 지어 만들라고 했는데, 이를 족분제도라 일컫는다. 추정컨대 고려 시대의 왕릉이 개성 부근의 산악지대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왕릉에 다녀오는 일에 불편함이 많았고, 또 그 능을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음을 보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실제로 태조는 왕위에서 물러나 무학대사와 함께 자신의 묏자리를 보러 다녔다. 그러다 현재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검악산 기슭에서 더없이 좋은 자리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날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태조가 자신이 묻힐 자리를 바라보며 "이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겠구나."라고 했으니, 바로 망우리의 동명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왕릉이 도읍지 한양 근처에 있었던 까닭은? 결국 접근성 때문이었지 싶다. 그리워 하는 마음이야 식을 줄 몰라도 님께서 저 멀리 떨어진 곳에 계시다면야 마음먹기도 쉽지 않았을 것임은 옛사람들도 마찬가지였으리니. 왕릉은 임금이 사후에 머무는 신성한 장소였다. 때문에 평소 살던 왕궁에 못지않게 화려하고 장엄하게 꾸몄을 것이다. 왕릉을 만들 때는 풍수지리상 최고의 명당에 자리를 정하고, 그 무덤 앞에는 생전에 신하들을 거느리고 통치하던 것처럼 돌로 만든 조각상을 세웠다. 왕의 명을 충직하게 받들어 모시는 문관과 무관의 모습인 문인석과 무인석, 신하들이 왕명을 받들러 타고 가는 마석 그리고 잡귀로부터 능을 보호하는 호랑이와 양인 석호와 석양이 그것이다. 한편 조선왕릉 중 무덤 위에 억새풀이 자라는 릉이 있다면 믿겠는가? 관리를 못하는 게 아니라 유언 때문이라는데, 그곳은 바로 동구릉의 명당 중 명당에 해당되는 곳 건원릉이다. 고향 함흥 땅의 억새풀이 무성히 자라는 흙을 무덤 위에 덮어 달라는 유언을 남긴 이 왕은 누구였을까? 억새풀이 자라는 동구릉의 명당? 바로 태조 이성계의 무덤이다. 여기서 퀴즈 하나 내련다. 왕릉에는 보통 왕과 정실부인 왕비가 함께 묻혀 있는데 예법상 왕은 어느 쪽에 묻었을까? 오늘은 가까운 곳으로 서울시 은평구와 맞닿아 있는 고양시 서오릉(사적 제198호)으로 행차하기로 한다. 세계유산 조선왕릉을 찾아서 말이다. 

서오릉 입구

조선왕릉은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지난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종선 왕족의 무덤은 모두 120기에 이른다. 이 가운데 능이 42기, 원이 14기, 묘가 64기에 이른다. 42기의 능 가운ㅏ데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태조의 첫째 왕비인 신의왕후), 후릉(정종과 정안왕후)을 제외한 40기의 능이 남한에 있다. 500년 넘는 한 왕조의 무덤이 이처럼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은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한편 무덤 주인의 신분에 따라 그 명칭을 달리 하는데, 왕과 왕비의 무덤이 '능', 왕세자와 왕세자빈 등 의 무덤은 '원' 그리고 그 외 왕족의 무덤은 '묘'라고 한다.  

숙종임금 명릉에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소재한 서오릉에는 모두 8기의 무덤이 있는데 서오릉이라 칭한 것은 경릉(추존 덕종의 능, 의경세자, 성종의 친부), 창릉(예종과 안순왕후의 능), 익릉(숙종비 인경왕후의 능), 명릉(숙종과 인현왕후, 인원왕후의 능), 홍릉(영조비 정성왕후의 능)의 임금의 능이 5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순창원(명종의 아들, 순회 세자와 공회빈 윤 씨의 원), 수경원(추존 장조[사도세자]의 생모 영빈이 씨의 원), 대빈묘(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생모 추존 옥산부대빈 장 씨[장희빈]의 묘)를 합쳐서 모두 8기의 무덤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서오릉의 비밀 1). 

명릉으로 들어가다

숙종은 제18대 현종의 아들로 왕위에 올라 기사환국(1689년), 갑술환국(1694년)을 거치며 당파싸움을 잠재우고 왕권을 강화하며 사회체제 전반을 정비하는 업적을 남겼다. 왕비 3명은 물론 후궁과 함께 잠들어 있는 숙종임금은 사극에서뿐만 아니라 이곳 서오릉에서도 주인공임을 자처하고 있는 것인가? 서오릉의 두 번째 비밀이 될 것이다. 

대빈묘(장희빈)

한편 홍릉에는 왕(영조)의 능침공간이 비어 있는데, 이는 영조 사후 동구릉 원릉에다 영조의 능을 조성하였기 때문이다(세 번째 비밀). 조선왕릉이 도굴되지 않은 이유가 세조 때부터 사용한 회격때문? '회격'은 무덤과 관 사이를 석회로 메우는 것을 말함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마치 콘크리트처럼 단단해 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4번 째 비밀이 될 것이다. 아무튼 드넓은 부지에 주차여건 좋고 서울에서의 접근성도 좋아 사시사철 방문하기 좋은 곳으로 거듭나고 있는 곳이 서오릉이다. 참고로 위에서 던진 질문의 정답은 앞에서 볼 때 왼편이 왕의 무덤이다. 

주요 관람코스 :
매표소에서 명릉을 거쳐 대빈묘까지 약 1.5km 코스가 첫 번째(도보로 약 20분 정도 소요), 다음은 대빈묘에서 홍릉을 지나 서쪽 끝 창릉까지 약 40분 소요되는 코스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소나무길(약 1km, 20분)과 서어나무길(약 2km, 40분)도 호젓하니 걷기 좋은 길이다. 

찾아가는 길 :
6호선 구산역 1번 출구에서 광역버스(9701) 이용/ 3호선 녹번역 4번 출구에서 시내버스(702A, 702B), 광역버스(9701) 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