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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부소산성, 백제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가다

잃어버린 왕국, 백제! 그 백제의 문화유산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박물관이라면, 백제 사람들이 남겨놓은 자취는 지금의 부여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바닷길을 따라 외국과 자유로이 왕래했던 개방적인 자세와 자연을 닮아 비교적 온화했을 기질 등을 살펴보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약 700년의 역사를 어떻게 마감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멸망의 순간도 더듬어 볼 수 있을 것이고. 서울 광화문에서 167km, 자가용으로 2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곳 충남 부여로 떠나 본다. 
능산리 고분군. 백제의 왕과 왕족의 무덤인 이곳은 부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약 3.5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백제 무왕이 선화공주를 위해 조성했다는 궁남지를 거쳐 직접 걸어서 가기로 한다. 느리게 걷기가 어울리는 곳이 또 부여 아닐까? 이곳 서쪽의 절 터에서 발견된 것이 바로 백제 금동 대향로이다. 고분군 입구에는 모형전시관이 있어 백제의 무덤 양식의 변천사와 무덤 내부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지난 2000년 경에는 당시 당나라에 끌려가 죽은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과 태자 융의 무덤 흙을 중국에서 가져와 두 사람의 넋을 기리는 작은 무덤(가묘)도 만들어 놓은 걸 볼 수 있다. 부소산성. 도성과 왕궁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요새인 이곳, 부소산성은 뒤로는 백마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고, 앞으로는 부여읍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아주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산성 내엔 장군의 지휘소가 있던 곳에 사자루, 영일루 등의 누각이 있고 군량미를 비축했던 군창지가 있다. 군창지에선 불에 탄 곡식의 일부가 발견되기도 했는데 모두 조선시대의 것으로 밝혀진다. 결국 부소산성은 조선시대에도 사용되었던 것임을 짐작케 해준다. 한편 부소산성 매표소를 통과하면 삼충각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은 의자왕 때의 충신 성충, 흥수 그리고 계백장군 세 명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이다(백제판 현충사).

부소산성 군창지
부소산성 백화정
백마강과 낙화암

백마강과 낙화암. 충남 부여 근처를 흐르는 금강의 줄기를 백마강이라고 하는데, 그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이 강을 건널 때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자, 강에다 흰말을 미끼로 던져 용을 낚아 올렸더니 구름과 안개가 걷혔다고 해서 백마강이라 불렀다는 전설도 있다. 그러나 이는 백제 멸망 이후에 후세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였다. 어떤 기록에는 원래 이 강의 이름이 백촌강이었고, 촌을 우리말로 하면 마을이니 백촌은 '흰 마을'이 되는 것이고, 또 백마는 우리말로 '흰 말'인 것이다. 결국 말과 마을은 그 소리가 비슷하니 백촌강이 백마강으로 순화된 것이란 얘기이다. 아무튼 이 백마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세워진 것이 바로 백화정인데, 백제 멸망 당시 삼천 궁녀가 강에 떨어져 자진한 곳이란 전설이 있는 낙화암에 세운 정자인 것이다. 3천 궁녀 이야기도 훗날 의자왕을 나쁜 왕으로 만들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란 주장이 설득력 있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니까 말이다. 낙화암 백화정에서 약 10분 정도 내려가면 고찰 고란사에 당도하게 된다. 고란사 약수 한 모금 그냥 지나칠 수는 없겠고. 고란초는 고란사 뒤 절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불린 이름인데, 전설에 의하면 백제 왕이 고란사 약수를 애용하여 매일 약수를 떠 오게 하였는데 궁녀들은 고란초 잎을 한두 개씩 물 위에 띄워옴으로써 고란약수임을 증명하였다 한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고란약수를 한 잔 마시면 삼 년씩 젊어진다고 하여 너무 많이 마셔서 갓난아기가 된 할아버지 이야기도 있다. 뭐든 과하면 탈이 나는 법 아닌가? 고란사를 나오면 바로 아래에 선착장이 있어 백마강 달밤을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다. 한적한 유람선을 타고 구드래 나루터로 오는 길, 그 뱃전에서 가만히 생각에 잠겨 본다. 7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찬란한 문화 왕국 백제의 멸망을 몸소 껴안은 부소산성, 낙화암 그리고 백마강은 그날을 분명 기억하고 있을 터이다. 그러나 결코 말이 없다. 다만 말없이 말해주려 함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