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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마을을 지키는 민간신앙, 장승

옛날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마을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 생각했을까? 마을 안은 언제나 성스럽고 조화로운 세계고 이에 비해 마을 바깥은 불안하고 무질서한 세계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 자신들이 사는 마을이 언제나 신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선택된 땅이라는 확고한 믿음이라도 있었던 걸까? 아니면 예측할 수 없는 불행과 자연재해로부터 자신의 삶과 터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신들을 만들어 낸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사람들은 과연 언제부터 하늘을 우러르며 신의 보살핌을 찾게 되었을까?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소박한 기원이 담긴 것을 민간신앙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우리 조상들의 삶속에서 뿌리 내려온 이 민간신앙엔 어떤 것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까?  
사람들은 자신의 삶 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위나 나무, 산, 강, 바다, 동물 등에 신비한 어떤 힘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이들을 바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산신령을 모신 삼신당, 마을 입구의 장승, 솟대, 돌무더기, 남근석, 선돌, 당산나무 등이 바로 오늘까지 전해져 오는 민간신앙의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서민들은 이런 상징물들을 마을 주변에 모셔놓고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삼았다. 그리곤 소원을 빌고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길 빌었다. 때로는 이런 신앙이 미신처럼 보이고 보잘것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어 무척이나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굽이굽이 구천동 계곡'으로 유명한 전북 무주군의 심곡리 배방마을 장승을 찾아 떠나기로 한다. 장승은 부릅뜬 눈으로 마을 입구를 지키는 수문장과 같다. 벅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당장군, 수막살이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도 불렸다. 지역에 따라 나무로 만든 것도 있고 돌을 깎아 조각하여 세운 경우도 있다. 장승은 보통 남녀가 한쌍을 이루고 있다. 남자 장승에는 관모를 씌우거나 수염을 그리고 여자 장승에는 비녀를 꽂아 서로 구별하는데, 남자 장승은 천하대장군 여자 장승은 지하여장군이라고 부른다. 이 장승에 세워져 있는 곳을 장승 거리, 서낭당, 노루목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마을 이름에 이런 말이 들어가 있으면, '전에 장승이 있었던 곳이구나.'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대부분 장승이 세워져 있었다. 그중에서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 배방마을은 산신에게 지내는 마을제사의 전통, 일종의 동제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마을 뒷산 중턱에 자리한 산제당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제(심곡리 배방 산신제)를 올린다는 것이다. 또한 마을 입구의 약 40여 년된 장승 앞에서는 거리제를 올린다.      

심곡리 배방마을 장승

심곡리 배방 산신제는 음력 정월 초 이튿날 밤에 마을 뒤편 당산이라 불리는 소나무 숲 속에 있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함석지붕으로 된 산제당에서 지내는데, 이때 제사 비용은 마을 기금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보통 세사람 정도의 제관이 참여하는데 제사 음식으로는 김, 미역, 밤, 대추, 떡 밥, 돼지머리 등을 준비한다. 제는 유교식으로 진행하는데 초헌, 중헌, 종헌의 순으로 이어지고 축문을 읽고 개인마다 소지를 올린다. 산신제를 올린 다음 날 마을 사람들은 함께 모여서 음복을 하고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한다. 한편 마을 입구의 장승 앞에서는 보름날 저녁에 거리제를 올린다. 전북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 배방마을이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정확하진 않으며, 현재에는 대부분 덕유산 무주 리조트를 찾는 방문자들을 고객으로 하는 상가를 이루고 있다. 스키 대여장을 비롯해서 식당가, 펜션 등이 운영 중에 있다. 덕유산 산행을 위해서 혹은 무주리조트를 찾았다가 인근에 머물게 된다면 산책 삼아서라도 들러보면 좋을 곳, 심곡리 배방마을 그리고 장승! 알면 사랑하게 되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