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일본으로 팔려갔다 다시 돌아온 세한도의 기구한 사연

세한도는 알고 보면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지니지 않았는가? 추사 김정희(1786~1856)에게 직접 선물로 받은 이상적이 죽은 후 제자였던 김병선과 그 아들 김준학에게로 차례로 그 소유권이 넘겨지게 되는 운명의 세한도! 이어 휘문고 설립자인 민영휘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의 아들 민규식은 구한말 경성제대 교수이자 추사 연구가인 일본인, 후지즈카 치카시(1879~1948)에게 그만 양도하고 만다(돈이 필요해서였던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어찌...). 태평양전쟁의 상황이 심각해지자 후지즈카 치카시는 본국인 일본으로 세한도를 가지고 건너가게 된다(형식상으로 문화재 불법반출은 아닌 셈이다).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그런 세한도가 어떻게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 국보로까지 지정(1974. 12.31.)되기에 이르렀을까? 
장무상망. 추사가 제주도에서 유배 살던 시절이던 1844년에 그린 그림이 바로 '세한도'인데 그림의 끝부분에는 자신이 직접 쓴 글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그 글 속에서 추사는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장무상망'이란 말을 담아 보낸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 정도로 풀이되는 어찌 보면 평범한 안부인사 같은 말이다. 그러나 추사에겐 그렇지가 않았던 것 같다. 귀양살이 온 처지라 여러 모로 아쉽고 부족한 게 많았을 그에게 제자 이상적은 청나라에서 어렵게 구해온 갖가지 서적들을 보내왔던 것이다. 잘 나갈 때라면 모르겠지만 저 멀리 제주로 유배 온 추사임에도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 않았던 제자에게 무척이나 고마웠던가 보다. "날이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 측백나무가 늦도록 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라며 이상적에 대한 마음을 직접 글로 표현하고 있음이니 말이다.                                                                국보 제 180호. "한 채의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소나무와 측백나무(잣나무로 보는 견해도 있음) 총 4그루가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며, 주위는 그냥 텅 빈 모습으로 여백 처리를 함으로써, 극도의 절제미와 생략기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측 상단엔 세한도라는 그림의 제목과 함께 '우선시상(우선에게 주다, 우선은 이상적의 호)', '완당(추사의 또 다른 호)'이라 적고 직인까지 찍어 놓았다. 다소 거칠고 메마른듯한 붓질을 통하여 한 채의 집과 고목들이 풍기는 스산한 분위기가 추운 겨울의 분위기를 맑고 청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른 붓질과 묵의 농담, 간결한 구성 등은 지조 높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라고 문화재청에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물론 전부는 아닐 터이다.          

세한도 안내판

소전 손재형. 1944년 세한도가 일본으로 넘어간 사실을 알고 땅을 치며 분개한 사람이 있었다. 서예가이면서 추사 컬렉터였던 진도 사람, 소전 손재형(1903~1981) 선생은 직접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간다. 사실 일본으로 가기 전 이미 후지즈카를 찾아가 세한도의 양도를 요청한 바도 있었던 터였다. 그러나 후지즈카 치카시도 추사의 작품세계에 매료되어 있던 바 순순히 내어줄 리가 없었다. 이번에도 거절당하고 만다. 그러나 소전 선생은 여기서 굴하지 않고 무려 두 달간이나 매일 그의 집으로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또 부탁을 하게 된다. 전쟁통의 위협을 무릅쓰고 일본으로 건너 간 그가 아니었던가? 호락호락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두드리면 열리는 게 사람의 마음이었던가? 결국 소전 선생의 집념에 감복한 후지즈카 치카시는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세한도를 넘겨주게 된다.                                                   
태평양 전쟁. 1944년 말 무렵은 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때로 도쿄엔 미군의 공습이 한창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일본행을 강행한 소전 선생을 보면서 일본인 교수도 무언가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소전 선생이 세한도를 넘겨받고 돌아간 약 석 달 후, 후지즈카 교수의 집은 폭격을 맞게 되고 연구실은 모두 불타버리게 된다. 정말 아찔해지는 순간이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우리의 것'을 지키려 했던 소전 선생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국보 세한도를 눈으로 직접 마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제주추사관. 추사가 유배생활을 했던 제주에는 추사적거지와 더불어 추사기념관을 관람할 수 있다. 제주 여행 땐 빠지지 않고 다녀오는 곳이다. 일본에 팔려갔다 다시 돌아온 기구한 사연의 세한도는 현재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빼앗긴, 국외로 반출된 우리의 문화재는 그 수량이 대체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