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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여행의 이유

"작가는 대체로 다른 직업보다는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지만, 우리들의 정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로 다녀오는 여행이다. 그 토끼굴 속으로 뛰어들면 시간이 다르게 흐르며, 주인공의 운명을 뒤흔드는 격심한 시련과 갈등이 전개되고 있어 현실의 여행지보다 훨씬 드라마틱하다."라고 읊조리는 대목에서 살며시 직업적 박탈감을 느꼈다. 동시에 그의 토끼굴 속에 '어디 한 번' 뛰어들고픈 기분에도 사로잡혔다. 김영하 작가의 2019년 작, <여행의 이유> 214쪽을 지금에야 펼쳐 들게 된 이유가 되었다. 짙은 오렌지색 책 표지를 넘기면서 굳이 '김영하 산문'이란 부제를 단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도 품어 보았다. 

책 목차

생각보다 조촐한 목차였다. 그러나 2005년 12월의 어느 날, 상하이 푸둥공항에서 '사소한 실수'로 추방당했던 흔치않은 경험담은 반전의 묘미였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여행에 치밀한 계획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이 너무 순조로우면 나중에 쓸 게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사건 이후 그가 기준 삼았을 '여행의 원칙'이 아닐까 싶다.

로널드 B. 토비아스의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에서 언급된 '추구의 플롯'을 소개하면서 흥미로운 점은 이야기의 결말에 있다고 하였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있는 다음 두 가지의 사례에서 그가 말하는 '흥미로운 점'은 과연 무엇일까? 

"마르코폴로는 중국과 무역을 해서 큰돈을 벌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났지만 이 세계가 자신이 생각해왔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과 짐승, 문화와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와 그것을 <동방견문록>으로 남겼다. 

본문 중에서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 길가메시는 죽지 않는 비결을 찾아 헤맨다. 험난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던 그는 '불사의 비법' 대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통찰에 이른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아내와 자식이 있는 고향으로 향한다. 긴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귀환한 그가 진짜로 얻게 된 것은 신으로 표상되는 세계는 인간의 안위 따위에는 무관심하다는 것, 인간의 삶은 매우 연약한 기반 위에 위태롭게 존재한다는 것, 환각과 미망으로 얻은 쾌락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처음 길을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고향인 이타케에 도착한다. 여행을 통해 그들은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여행기에 대한 평소 그의 생각아닐까 싶었다.  

"여행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을 보면 뜻밖에도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다."며 다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도하였다.  

책 본문 중에서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계속해서 첫머리에 떠오르는 건 TV 예능프로그램 <알쓸신잡>이다. 물론 작가로서의 그를 처음 알게된 것도 바로 여기에서다. 시즌1의 첫 촬영지, 경남 통영에서 시작된 '지식인'들의 여행은 시즌3의 진주 편까지 그 포맷은 비슷했단 생각이다. 출연진이야 일부 교체는 있었지만 각자 '알아서' 여행하고, 저녁에 '모여서' 자신들의 여행 경험을 공유하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작가는 이를 두고 '이상한 여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여행이란 무엇인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나가는 일이나, 자기 거주지를 떠나 객지에 나다니는 일, 다른 고장이나 다른 국가에 가는 일 등을 말한다(위키백과).' 사전적 의미에 개인적 의견 한 가지를 추가해 본다면 '다시 돌아올 예정으로'가 되겠다. '방황'이나 '가출'과는 분명 다른 점이 여행 아닐까 싶다. 작가는 더욱 현실감 있게 양념을 치고 있다.  

"영어에는 'armchair traveller'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말로 바꾸자면 '방구석 여행자'쯤 될 것이다. 편안한 자기 집 소파에 앉아 남극이나 에베레스트, 타클라마칸사막을 탐험하는 여행자를 조금은 비꼬는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어는 정도는 모두 '방구석 여행자'이다. 우리는 여행 에세이나 여행 다큐멘터리 등을 보고 어떤 여행지에 대한 환상을 품는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그곳을 다녀온다.

그러나 일인칭으로 수행한 이 '진짜' 여행은 시간과 비용의 문제 때문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우리는 그곳을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 우리는 또 다른 여행서나 TV의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가 이미 다녀온 곳을 그들이 여행하는 모습을 보거나 읽게 된다. 나와는 다른 그들의 느낌과 경험이 그들의 언어로 표현되어 내 여행의 경험에 얹힌다. 여행의 경험은 켜켜이 쌓여 일종의 숙성과정을 거치며 발효한다.

한 층에 간접경험을 쌓고 그 위에 직접 경험을 얹고 그 위에 다시 다른 누군가의 간접경험을 추가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여행에 비 여행, 탈여행이 모두 더해져 비로소 하나의 여행 경험이 완성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서도 여행의 의미를 찾아볼 수가 있었다. "모든 여행은 끝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게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책 표지

여행의 이유? 

전쟁이나 폭동의 위험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난민의 경우, 그것을 여행이라 할 수 있을까? 부모의 직장 때문에 이사를 가게되는 아이들의 입장도 마찬가지이겠다. 이에 대한 작가의 입장은 분명했다. "여행은 자기 결정으로 한다. 자기 결정은 통제력과 관련이 있다."

코로나탓에 본의아니게 '랜선 투어'를 즐기는 분들도 많다. 덕분에 명산절경 중에서도 좀 한적한 곳을 찾아 '나홀로 유람'을 다닌다는 분들도 많다고 들었다. 곧 추석연휴도 맞이하게 된다. 보통 때 같았으면 특히 해외여행 비행기 티켓은 벌써 매진되었을 것이다.

내일도 떠날 채비를 하고 계신 여러분!

"여러분이 여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떤 여행기를 쓰고 싶으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