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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마흔의 인문학 살롱

마흔의 인문학 살롱. 마흔이란 나이가 불혹? 믿지 않은 지 오래전이다. 제2의 삶? The second life? "그런 게 있기나 해?" 하면서 지나친 지도 벌써 오래전 일이다. 우물쭈물하다 50 플러스 세대가 되고야 말았다. 인생시계로 치자면 점심시간도 제법 지난 셈이다. 커피로 입가심은 하고 있지만 점심도 그리 맛있게 먹었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환절기 탓이겠거니 하면서도 뭔가 꺼림칙하다. 책상에 앉아보지만 마치 잡동사니 쌓아둔 듯 여기저기 정리안 된 뭉치들. 깔끔한 맛이라곤 없다. 답답해져만 온다.

어디서부터 놓쳐버린 걸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지금 거울 속 내 모습은 얼마나 당당할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그런 삶을 살아가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미국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 1904~1987)의 말을 곱씹어 본다. 이렇다 할 내세울 게 없다. 퇴근길엔 오래간만에 동네 책방에라도 들러봐야겠다. 

책 표지

올리브 동산. "마흔이 되었을 무렵,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그림 배우기를 시작했다. 회화수업을 듣다보니 미술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미술사를 파고들다 보니 다양한 인문학의 세계와 조우하게 되었다. 미술사를 이해하기 위해 공부한 신화는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해온 우주와 자연, 인간에 대한 통찰이 가득한 지혜의 보고임을 깨달았다."며 "마흔에 시작한 인문학 공부가 나를 아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타인과 교류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어주기도 했다"라고 역설하는 네이버 블로거(우재의 올리브 동산 운영자)가 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역사, 미술, 신화, 와인을 통섭한 교양강의를 하였다며, 현재는 미국 애크론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미술과 신화 또 와인 등 평소 아킬레스건이라 다름없는 분야이다. 때문인지 쉽지 않겠단 생각부터 들었다. 일종의 거부 반응이랄 수도 있겠고. 창가에서 독서하고 있는 책 표지의 여성과 저자는 혹 닮은꼴 아닐까? 인문학 공부와 글쓰기를 통한 지혜로운 노년의 삶을 구상 중이라는데...        

책 목차

역시나 책의 목차는 미술, 신화, 와인이라는 세 가지의 주제를 담고 있었다. "서양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 중 그리스 로마 신화와 와인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고, 서양의 예술 작품들을 보면 신화와 와인을 주제로 삼은 작품들이 대단히 많다."라며 은근 꼬드기고 있지 않은가.

그나마 말미에서 한 저자의 말에 일말의 용기를 가져도 보게 되었다. "미술, 신화, 와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살면서 자신을 매혹하는 주제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깊게 파고들다 보면 공부와 내 삶이 합일되어 그로부터 기쁨과 깨달음을 경험하게 되는 순간이 분명 찾아올 것이다. 그 경험의 여부가 마흔 이후의 삶을 충만하게 만들지 말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책 본문 '미술' 중에서

고등학교 미술시간이 떠올랐다. 목판화 실기 수업이었다. 책받침 보다 조금 더 컸던 판목에다 밑그림을 그리고 조각칼과 끌을 사용 해서 공백 부분을 파내면 되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그렸다. 그러나 무엇을 의도했는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정확히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자를 대고 줄을 그어 여러 개의 정사각형으로 나누었다. 각각의 칸에는 좌우로 서로 대칭되는 도안을 넣었던 것 같다. 책상 줄 사이를 왔다 갔다 하시던 미술 선생님이 내 것을 보시더니 툭 던지셨다. 대충 얼버무렸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께서 몇 가지 조언을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학예전에 작품으로 전시되는 행운도 누렸던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니 중학교 땐 사생대회에서 장려상인가 받았던 기억도 소환되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의 실재했던 미술사 였다. 저자는 샤갈의 그림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림 속 보일 듯 말 듯 작게 그려진 아이를 보면서 문득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다. "네 기억 속의 그 꼬마는 여전히 안녕하니?", "삶의 고비마다 너는 좌절하지 않고 잘 살아왔니?" 나는 지금 어떤 어른이 되어 있나?  

책 본문 '신화' 중에서

고난으로 가득했던 삶, 비극적 말로. 헤라클레스는 생후 8개월 때 헤라가 보낸 두 마리의 뱀을 목졸라 죽이고 만다. 떡잎부터 달랐던 그였지만 고난은 계속된다. 모두 '12가지의 고난'을 겪게 되니 말이다. 예컨대, 사람과 동물을 잡아 죽이는 네메아의 사자, 전국을 헤집고 다니며 농사를 망치거나 사람을 공격하는 크레타의 황소 등을 잡아 처단하는 일이었다. 위 사진 속 <하늘을 이고 있는 헤라클레스>는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의 황금사과를 따오기 위해 세상의 서쪽 끝으로 가서 잠시 아틀라스의 벌(영원히 하늘을 지고 있어야 하는 벌)을 대신 서는 장면이다. 헤스페리데스의 아버지가 바로 아틀라스였던 것이다. 하늘을 지는 고통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었던 아틀라스는 흔쾌히 헤라클레스의 부탁을 들어주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번 기회에 영원히 고통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들었던 아틀라스! 그러나 헤라클레스도 그 정도의 심사는 읽을 줄 알았다. 기지를 발휘해 아틀라스로 하여금 다시 하늘을 지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  헤라클레스는 12가지의 고난을 모두 완수해 내고 만다. 실로 영웅이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헤라클레스는 세상의 수 많은 괴물을 물리쳤던 괴력의 영웅이었지만 두 번째 부인 데이아네이라에게 신뢰를 얻지 못해 그만 죽음에 이르고 만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을 맞이한 헤라클레스! 그러나 죽음 앞에서 비굴하지 않았다.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생각되자 부하들에게 장작더미를 쌓게 하고는 불을 붙이라 명한 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천하무적의 영웅이었지만 하루아침에 스러져갈 수밖에 없었던 이 헤라클레스의 신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던져주는가?    

책 본문 '와인' 중에서

"와인은 그냥 마셔도 좋지만 관련된 신화와 역사,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안주 삼다 보면 풍성한 대화의 향연이 펼쳐지는 문화의 음료로 변신한다. 미술과 신화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기호식품으로만 여겼던 와인에 장구한 서양 문명사가 담겨 있음을 깨달았다." 와인을 평소 많이 즐기지는 않는다. 더 가까운 곳에 있는 막걸리나 맥주도 너무 체질이다. 그런데 한 번씩 마시는 와인도 꽤나 달콤했던 기억이 분명하게 남아 있다. 레드와인 보다는 가벼운 느낌인 스파클링 와인 한 잔, 그 톡 쏘는 맛은 하루를 마무리 하기에도 충분하지 않은가?

"잔을 채우는 즐거움에 더해 인문학적 지식을 채우는 희열까지 두루 누릴 수 있는 대상이 바로 와인이다."라는 대목에선 와인 예찬론이나 다름없었다. 와인에 대해선 아직 잘 모르지만 "주신 디오니소스가 달콤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기분"이라고 한 저자의 말에는 십분 고개가 끄덕여진다. '술맛'은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본문 '에필로그' 중에서

"비로소 내 마음의 중심과 본질을 깨닫게 되었다." '미술'과 '신화'와 '와인'에 대한 테마를 중심으로 인터넷 상 본인의 블로그 계정을 통하여 '인문학 살롱'을 운영해오고 있는 저자! 그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일견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기도 한 셈이다.

나이 마흔이신가?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또 무엇을 하고픈지 찾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책에서 저자가 밝혔던 솔직 담백한 이야기에 가만히 눈과 귀를 대어 보길 권한다. 그런 다음에는 자기 내면의 소리에도 집중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나이 마흔? "나를 위한 진짜 공부를 시작해야 할 나이"라고 저자는 애정어린 격려를 보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