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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북한산 산영루

북한산 국립공원을 찾았다. 정문을 통과하면 이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졸졸졸 계곡길을 따를 것인가? 정문 격인 대서문으로 향할 것인가? 늘 그랬듯이 오늘도 좌측으로 난 계곡길을 선택한다. 상황에 따라 목적지에 따라 다르겠으나,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을 땐 혹은 아직 워밍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대서문 방향도 좋다. 산성에 왔으니 그 정문을 통과해야 제대로 탐방하는 것 아닌가? 둘레교 앞에서 주변을 둘러본다. 다리 아래로는 쉼 없이 계곡물이 흘러간다. 곧이어 창릉천(덕수천)에 닿을 것이고 사곡교 아래를 지나 구파발(금암 문화공원) 곁을 스쳐 결국엔 한강(방화대교 부근)으로 스며들 것이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도 솜털다워 제법 청명한 낯빛을 보여준다. 이보다 더한 환영사는 없을 것이다. 등산화 끈을 조여 본다. 수구문 근처에선 괜시리 유실된 성벽 구간을 힐끔 거려도 보고 복원 불사 중인 서암사의 기왓장도 잠시 어루만져 본다. 계곡 물소리는 점점 세차게 굽이치고 있다. 이윽고 북한동 역사관 앞. 역시나 많은 산객들이 저마다의 표정과 차림새로 삼각산을 노래하고 있다. 저 위로 백운대, 만경대 그리고 노적봉 등 북한산 정상부가 온통 시야를 가리고 만다. 물론 오늘의 목적지는 산영루임을 잊지는 않았다. 국녕사 길을 지나고 중성문을 지나 드디어 단청 옷 새로 갈아입은 북한산 산영루에 도착했다.       

고양 북한산 산영루

고양 북한산 산영루지(경기도 기념물 제223호)는 '북한산의 아름다운 모습이 계곡에 비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중기 1603년 문인 이정구가 북한산 일대를 유람하고 남긴 <유삼각산기>에 '산영루 옛터로 내려왔다'는 기록으로 보아 북한산성이 축성(1711년)되기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바닥의 평면구조는 종로구 상명대 앞의 세검정과도 흡사한 모습이다. (바닥이 돌출된 모습)

다산과 추사. 명산절경엔 당대 명사들의 유람도 있었을 터, 다산 정약용(1762~1836)과 추사 김정희(1786~1856)도 이곳을 방문하여 시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성호 이익(1681~1763)은 산영루에 뜬 달을 삼각산 팔경의 하나로 기록한 바 있다.  실제로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에 산영루 유람 기록이 있고(1794년, 정조 18년), 1816년 김정희의 <완당 전서>에도 산영루 유람 기록이 있다. 조선을 찾았던 외국인들 중에도 산영루를 방문하고 사진 촬영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이곳이 명산 절경이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험한 물길 끊어지자 높은 난간 나타나니 겨드랑에 날개돋쳐 날아갈 것 같구나,
십여 곳 절간 종소리 가을빛 저물어가고 온산의 누런 잎에 물소리 차가워라,
숲 속에 말 매어 두고 얘기꽃을 피우는데 구름 속에 만난 스님 예절도 너그럽다,
해지자 흐릿한 구름 산빛을 가뒀는데, 행주에선 술상을 올린다고 알려오네" 

을축년 대홍수. 100여 년 전인 1925년 대홍수는 많은 것을 휩쓸고 지나갔다. 앞서 언급한 수구문도 그렇고 이곳 산영루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10개의 주춧돌과 그 터만 남아 있었던 것을 지난 2014년 무려 90여 년 만에 고양시에서 고양 600년 역사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과거 사진 자료 등을 바탕으로 복원하였다.  

북한산 산영루 1

날개 돋친 산영루. 과연 다산의 지적이 틀리진 않았단 생각이다. 금방이라도 날아갈듯한 모습이지 않은가? 돌아서면서도 다시금 보게 된다. 한편 산영루 주변에는 비석 군과 바위에 쓴 글씨 즉 암각문이 있어 지나는 산객들의 걸음을 멈추게도 한다. 

북한승도절목

모두 325자로 된 암각문은 1855년 철종 때 새긴 '북한승도절목'으로, "승병 대장인 총섭을 임명할 때 예상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한 규칙 3가지"를 제시해 놓았다. (승영 사찰이 피폐하여 승도가 흩어지고 있었던 사실과 그 원인이 총섭의 부적절한 임명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북한산성선정비군

26기의 선정비. 이 비석들은 북한산성 관리의 최고 책임자가 재임할 당시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선정비로 모두 19세기에 건립된 것이다. (당시 관리를 맡고 있던 총융청의 총융사와 무위소의 제조, 경리사의 선정을 기리고 있다고 한다)  

북한산 계곡 물놀이 명당. "꿩 대신 닭"이라고 눈 앞의 산영루엔 오를 수 없으니 바로 옆 넓다란 암반 위에서 흐르는 계곡물에 발이나 담그는 게 상책 중의 상책이로다. 사진 우측으로 얼핏 보이는 건물이 바로 산영루! 새삼 기록의 중요성도 되뇌어 보게 된다. 특히 문화재 복원에 있어 원형을 제대로 알 수 있는 문헌이나 자료가 남아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엄청날 것이리라. 

사진 속에서 여름날의 한 때를 명산 북한산, 그것도 절경 산영루에서 즐기고 있는 안목있는 산객들이시여~ 부디 좋은 생각들도 많이 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래 본다.  

시간여행자의 하루는 짧디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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