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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3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실크로드 답사는 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여행이었다." 출판사 창비가 두른 책 띠지의 문구를 보면서 좀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대한민국의 전 국토는 박물관이다"던 그의 말은 어디로 간 것인가? 일종의 마케팅 문구겠거니 하면서 서문을 펼쳐 들었다. 그런데 서문의 말미를 장식하고 있는 문구가 바로 그것이었다. 저자 스스로 "모든 면에서 실크로드 답사는 내 답사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여행이었다."라고 밝히고 있었다. 슬슬 뻗쳐오는 무언가를 누르고서 읽게 된 책이 바로 유홍준의 '실크로드 답사 완결판'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국편 3>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였다.

책 표지

"실크로드 답사기는 나에게 여러 가지로 부담이 되었다."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 아닐까? "역사가 많이 낯설기도 하고 한두 차례의 답사만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익숙치 않다."라고 그는 밝히고 있다. 여기서 그동안 품고 있었던 작은 의문 하나도 해결된 셈이다. 즉 그는 최소한 대여섯 차례의 답사를 다녀온 후 책을 집필해왔던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를 읽으며 느꼈던 유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 유적지 주변 풍광에 대한 실감 나는 묘사, 책을 덮고도 여운이 남는 일깨움 등 그 모든 것들이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여행 길라잡이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던 그래서 어떤 유적과 유물에 대한 핵심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했던 각고의 노력 끝에 나온 결과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는 "정확하게, 재미있게, 유익하게"라는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학계의 연구성과를 열심히 공부해가며 답사기 체제로 집필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글에 공감 한표 누르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되었다. 슬슬 그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고 있는 것인지? 

서역 6강 중 하나 누란왕국!

"돈황에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카슈가르까지 약 2,000킬로미터이다." 흔히 '비단길'이라고 들어왔던 실크로드는 대체 어디서 어디까지를 말함인가? 미루어 두었던 의문을 풀지 않고선 술술 진도가 나가지 않을 것 같았다. 독일의 동양학자 알베르트 헤르만 이후 정통적인 실크로드의 개념은 중국 서안에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시리아까지 총 6,400킬로미터를 뜻한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국 편 1~2권에서 다룬 부분은 서안에서 하서주랑을 통과해 돈황까지 약 2,000킬로미터 구간이며, 이번 3권의 오아시스 도시 순례는 돈황에서 시작해 카슈카르까지 이어진다."라며 역시 자세한 설명을 빼 놓지 않고 있었다. 사실상의 실크로드는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사막 타클라마칸을 관통하는 바로 이번 여정과 다름 아님 또한 숨기지 않고 있다. 

"실크로드는 길이 아니다." 저자를 바로 앞에서 직접 대면한 것은 지난 6월 출판사인 창비에서 주최한 '저자 북토크'에서 였다. 그가 역설한 내용 중 하나는 "실크로드는 길이 아니고 타클라마칸 사막 주위의 오아시스 도시들을 연결해서 가는 것, 그 오아시스 도시와 도시를 이어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크로드"라는 것이다. 해서 책 제목을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로 정한 배경이 되었단 설명도 있었다. 현장법사나 혜초가 불경을 구하러 가던 길만이 아니었던 셈이지 않나?  

책 목차

"누란을 생각하면 아픔과 그리움이 동시에 일어난다." 실크로드에 대한 애잔한 감정을 토로했던 지난 6월에 있었던 저자 북토크가 다시금 떠올랐다. 저서의 제1장도 바로 누란(러우란) 왕국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잖은가? 타클라마칸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 중 하나인 누란(러우란) 왕국은 한나라가 흉노족과 맞부딪친 첫 번째 격전지였다. 누란 왕국에서 실크로드의 남로와 중로가 갈라졌기 때문에 이곳을 지배하는 자가 서역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한 군사거점이었던 탓이다. 자연스레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되었는데, 세월이 흘러 기원 후 2세기에 접어들자 흉노도 힘을 잃고 한나라도 멸망의 길로 접어들면서 누란은 서역 6강의 하나로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그런데 5세기로 들어서면서 북위의 침공으로 모래 속에 그만 묻혀버렸다. 그들이 의지하며 살던 로프노르(Lop Nor) 호수도 말라버렸고 왕국은 아예 종적을 감추고 말았던 것이다. 이로써 실크로드 남로는 사실상 끊어지고 말았다. 무려 1500년이 지난 20세기 초, 그랬던 누란이 세상에 그 이름을 다시 드러낸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지금은 갈 수 없는 나라, 잃어버린 누란 왕국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하는 것이 중국 편 제3권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편이다. 

책 내용 중 발췌


"죽음의 사막을 뚫은 건 결국 돈과 신앙이었다." 기원전 2세기 실크로드가 열리면서 조용했던 오아시스 왕국들은 고달파지기 시작했다. 비단과 옥을 매개로 한 카라반들의 발길이 바빠지고 동서교역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흉노, 돌궐을 비롯한 유목민족의 제국과 한나라, 당나라 등 역대 중원의 제국들이 서로 격렬하게 다투었으니 말이다. 그 틈바구니의 오아시스 도시들은 온갖 고통을 겪게 마련이었다. 상인들이 개척한 그 길을 따라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왔다. 불교를 전파하러 가는 서역승과 불법을 구하러 중국에서 천축(인도)으로 가는 입축승의 발길이 이어졌다. 잠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입안을 맴돌았다. 타클라마칸사막을 건너간 사람들의 목적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오아시스 도시들은 동서 문명의 교차로 역할을 했던 것이었고, 그 내면엔 돈과 신앙이 관건이었던 셈이다. 

실크로드 북중남로

"실크로드 답사는 과거로의 답사요, 오늘로의 답사이기도 하다." 무슨 말인가? 15세기 실크로드의 생명이 끝난 후 이 지역의 역사는 대단히 복잡해졌는데, 결국 청나라 건륭제가 1759년 이 지역을 점령하곤 '새로 얻은 땅'이란 의미의 신강(신장)이라 부르며 중국의 영토로 편입시켰던 것이다. 이후 청나라가 망하자 이 지역 무슬림들이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공화국'이란 깃발을 내세웠지만 끝내 독립을 못하고 1955년 이후 '위구르 자치구'로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위구르인들이 위구르 복장을 하고 위구르 춤을 추면서도 중국어로 말하는 것이 오늘날 오아시스 도시의 모습이란 설명이다. '운명의 소용돌이'란 표현이 떠올랐던 대목이다.     

"사실 이번 답사에서 예술적인 감동은 없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저자 북토크에서 있었던 그의 마지막 고백이었는데, 답사를 통해서 로마나 아테네 등에서 받았던 예술적인 감동보다는 서구 제국주의의 어두운 그림자(상처)만 가득했던 실상 탓이었지 싶다. 그러면서도 집필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은 오로지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 사막을 누비며 목도한 엄청난 대자연과 그 속에 숨어있던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음에 와 닿았고, 해서인지 언제고 또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으로 집필한 것이 아닐까 나름 짐작해 본다.

'베스트셀러' 저자의 몫만은 아닐 것이다. 여행자의 삶이란! 이제 사막과 오아시스, 미라와 석굴사원을 찾아가는 신비로운 순례길을 직접 책으로 만나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