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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금암기적비,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바통 터치한 영 정조

구파발역 인근 금암문화공원 하마비

지하철 3호선 서울 북쪽 끝 지점에 있는 구파발역! 특히 주말이면 인근의 북한산을 찾는 많은 산객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그 붐비는 1번 출구를 나와 북쪽의 은평 뉴타운 아파트를 향해 걸었다. 창릉천이 마치 가로막듯 흐르는 그곳에 있는 비석을 찾기 위함이었다. 도보로 약 10분 채 걸리지 않아 당도한 곳의 정식 이름은 금암 문화공원. 바로 위 사진 속 장소이다. 놀이터 시설에 화장실도 체육기구도 있는 제법 널찍한 장소다. 바로 옆으로는 은평 뉴타운 아파트가 있는 분명 흔한 동네 근린공원 분위기이다. 그런데 웬 하마비란 말인가? 분명 이곳이 성역임을 알리는 표식 아닌가? "대소인원개하마"란 글씨도 확연하다. 잠시 후 하마비에서 고개를 들어보니 이번엔 비각이 하나 보인다. "옳거니~ 저게 바로 내가 찾던 그 비석 아닌가?" (하마비는 조선시대 종묘, 궐문 및 문묘 앞에 세워 놓은 비석으로, 1413년 태종 13년에 처음으로 예조에서 건의하여 왕의 허가를 받은 다음 나무로 만든 표목을 세운 것이 계기가 되었다. 전면의 글씨는 "대소 관리로서 이곳을 지나가는 자는 모두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다)   

금암기적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어 있는 '금암기적비'가 분명하다. 이 비는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가 친히 글을 짓고 세운 비석이다. 현존하는 왕의 어제, 어필 비로서 서예사는 물론 문학사에도 중요한 사료이다. 비석의 사연은 서오릉의 명릉(숙종 릉)을 참배하고 궁으로 돌아가던 정조가 이곳에 들렀다가 조부인 영조의 옛 일화를 회상하면서 비롯되었다. 조부인 영조가 연잉군 시절, 부왕인 숙종의 탄신일(8월 15일)을 맞아 명릉을 참배한 후 생모인 숙빈 최 씨 묘인 파주 고령산 소령원에 들렀다. 그곳 농막에 5일간 머물다가 돌아오는 길에 밤이 늦어 이곳 금암참에서 쉬게 되었고, 때 마침 인근 창릉천에서 소도둑이 잡히는 일이 일어났다. 소도둑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연잉군은 참장 이성신에게 '선처'하라는 영을 내린다. "농부가 소가 없으면 어찌 농사를 짓겠는가? 이는 필시 흉년 탓이리라". 이에 참장은 소는 주인에게 돌려주고, 관가에는 고발하지 않는 것으로 처리하였다. 날이 밝아 연잉군이 입궁하자 세제로 책봉되었다는 좋은 소식을 듣게 되는데, 참장 이성신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에 하늘이 감동하여 연잉군에게 왕세제의 지위를 내린 것이라 여겨 이때의 일을 금암참 벽에 기록하여 사람들에게 교훈으로 삼게 하였다. 아무튼 이때의 일이 영조 등극 후 50년간 선정을 베푸는 징조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금암기적비명

2단으로 된 사각형 모양의 비신 받침대와 오석(까만 돌)으로 된 비신 위에 옥개석(지붕돌)을 올린 전선 후기의 전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는 금암기적비! 비신의 높이는 148cm, 폭은 68cm, 두께는 26cm 규모이다. 받침돌이 있으니 다가섰을 땐 훨씬 커 보이는 게 사실이다. 조선 정조 임금 5년인 1781년에 세웠다 한다. 240여 년이 흐른 세월을 고려하면 비석의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이었으며 비문의 글씨도 뚜렷하였다. 비문의 끝부분에 쓰인 글씨, "휼피동운 유암지상 지의피우 산사은탕, 중륜발휘 백령분위 귀두불륵 영고유게"는 "상서로운 저 붉은 구름 금암 위에 떠 있네, 땅은 비를 피한 듯하고 산은 옥돌을 감춘 듯하네, 해와 달빛을 발하니 많은 신령 달려와 호위하네, 이 비석 오래 남으리 영고께서 쉬셨던 이 곳에"는 의미라 한다. 

금암기적비 안내판

영조(재위기간 53년)와 정조(재위 기간 25년)의 대를 이은 업적들, 예컨대 영조 때의 노론 소론 당쟁 폐해 제거(정치적 안정화), 균역법 실시(민생안정), 청계천 준설(홍수 방지)과 실학의 진작 그리고 정조 때의 규장각 설치(신진학자 등용, 서적 간행), 전제 개혁(생산성 향상), 장용영 설치(군문 정비), 북학파 중시 등 사회개혁, 을 통해 조선 후기는 르네상스(정치적 안정과 중흥)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멋진 바통 터치였다고 할까? 오늘 그 역사적 현장 중 하나인 금암참(즉 현재의 금암 문화공원)을 시간여행자가 되어 다녀온 셈이다. 참고로 안내판 우측의 코드를 휴대폰으로 읽으면 문화재청 페이지로 연결되며, 예전의 비각이 없던 시절의 모습도 볼 수 있는데, 본 포스팅에서도 위 사진 속 코드를 읽으면 접속이 가능하다.   

한편 금암기적비 안내판은 2017년도 은평구 주민참여예산사업으로 제작되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