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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방이동 고분 탐방 후기

백제 이야기 혹은 백제의 무덤 스토리 한가닥 펼쳐 본다. 우선은 백제의 도읍하면 보통 부여나 공주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700여 년 백제의 역사에서 약 500년 동안 백제의 도읍지는 한강 유역이다.  4세기경 우리나라 지도상에서 가장 강성한 나라가 된 시기에도 이곳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의 부침 속에 결국엔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에 이르게 되지만 서해를 건너 중국과, 남해를 건너 일본과 교류하며 해양제국으로서의 면모도 떨친 나라가 바로 백제! 현재 서울에서 옛 백제의 흔적을 돌아볼 수 있는 곳은 아차산성, 풍납토성, 몽촌토성 그리고 석촌동과 방이동의 고분 등이다. 

아차산은 해발 200미터 정도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정상부의 보루에 서면 남으론 강남 일대와 북으론 의정부까지 한눈이다. 당연히 이곳은 전략적 요충지가 될 수 밖에 없었는데 처음에 성을 쌓은 나라는 백제였다. 나중엔 개로왕의 전사 등 고구려 군에 성을 빼앗기고 마는 뼈아픈 역사로 기억된다. 풍납토성은 강바람이 세찬 곳에 위치한 지형적 요건 탓에 불린 이름인데 지난 1997년과 2001년 조사과정에서 수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 궁궐 터로 추정되는 대규모 건물 터가 발견되었고 특히, 기와가 발견됨으로써 한성백제의 도성으로 추측되는 이유도 되었다. 풍납토성의 이웃인 몽촌토성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굴되었는데 진흙을 쌓아 올리고 다져서 만든 성벽의 길이가 2,285미터에 이르고 높이는 13~17미터나 되는 꽤 큰 규모의 성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풍납토성이 한강변 평지에 조성된 반면 몽촌토성은 남한산에서 북서쪽으로 발달된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기록에 의하면 백제의 첫 도읍지는 '위례성'이었단 사실을 기억하시는 분도 많을 터, 이 둘 중 과연 어느 곳이 진짜 백제의 도읍이었을까? 주장은 의견은 엇갈리고만 있다. 

올림픽공원을 산책하셨던 분이라면 '곰말다리' 건너 유명한 '나홀로 나무'에서 인증샷도 찍고 오셨을 터다. 바로 그곳이 몽촌토성인데 높고 기다란 토성을 따라 천이 흐르고 있는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해자'를 떠올려볼 수도 있겠다. 적군의 공격에 대비한 즉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용도였다. 다만 그 당시 한강의 물길을 도랑을 파서 유도한 것인지 아니면 있는 물길을 그대로 반영한 것인지는 명확 치는 않다. 잠실 석촌호수 뒤 조용한 주택가 한가운데에는 밖에선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바로 석촌동 고분군 때문이다. 백제 왕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마치 이집트의 피라미드 같은 돌계단식의 무덤군들을 만날 수 있다. 이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되는데 그중 3호기는 백제 근초고왕의 무덤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과거 석촌동 일대에는 모두 66기 가량의 돌무지무덤이 있었다는 기록(일제강점기)이 있고, 무덤군 위에 집을 짓고 살았던 사람들의 사진도 찾아볼 수 있단 사실에서는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방이동 고분군(9호, 10호분)

방이동 고분군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강제점령과 식민지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고적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전국적으로 고적조사사업을 진행하였는데, 그 결과로 현재의 방이동, 가락동, 석촌동 일대에서 백제 초기의 고분의 존재가 확인되었고 1917년에는 측량자료를 바탕으로 한 고분 분포도가 공개되기에 이르렀다. 방이동 고분군의 존재가 비로소 알려진 것이었다.   

한성백제시대의 고분군

흙으로 봉분을 크게 쌓아올린 굴식 돌방무덤(돌덧널무덤도 있음)인 점에서 석촌동 고분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 고분군의 모습니다. 무덤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복원해 놓은 점도 차이점이랄 수 있겠다.

현재에도 발굴조사가 진행중인 방이동 고분군에서 제1호기로 명명된 이곳은 제한적이나마 열린 틈새로 그 내부를 들여다볼 수가 있는 것이다. 한편 남한산 북쪽으로 낮은 구릉으로 서로 연결된 동네인 석촌동, 가락동, 방이동에는 백제와 신라 그리고 고구려 사람들이 모두 무덤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있다. 예컨대, 6호분에서는 백제 사람들의 무덤 쌓기 흔적이 남아 있었고, 4~6호분에는 신라 사람들이 사용하던 병, 접시, 굽다리 잔 등이 넣어져 있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여기서 품게 되는 의문 점 하나! 과연 이 무덤의 주인은 누구일까? 

방이동 고분군 전체 개요도

주목할 고분은 이중에서도 3호분이다. 지난 1976년 4~6호분 발굴조사를 끝으로 잠잠했던 이곳에선 40여 년 만인 2017년 3월부터 3호분 보존 정비를 위한 학술발굴조사(한성백제박물관 백제학연구소)가 진행중에 있다. 기 언급한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에서 왕이 살았다면 석촌동과 이곳 방이동엔 왕과 왕족 그리고 귀족들의 묘역을 조성했던 것이다. 다만 서울이 대도시화되는 과정에서 백제 한성시대의 무덤들은 그 원형을 잃어버렸단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잃어버린 왕국, 백제 이야기는 언제나 회환에 찬 백제 스토리로 귀결되는 이유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