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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복례문에서 즐기는 여행의 맛

복례문

안동 여행 계획하고 있는가? 하회마을에서 자동차로 십 여분 거리에 있는 안동 병산서원은 유네스코에서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한 곳이다. 지난 2019년 7월의 일이다. 유네스코에서도 인정한 병산서원의 아름다움과 서원으로서의 가치는 또 무엇일까? 오늘은 안동 여행으로 떠나 보도록 한다. 사진 속 제일 앞 건물은 병산서원의 정문 격인 복례문이다. 논어의 '극기복례'에서 따온 말이다. 나를 이겨내어 예로 돌아간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말하는 '예'는 당시 기준으로는 각자의 처지나 신분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도 있겠으나 현재에 와서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맡은 바 직무를 제대로 잘 수행한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서원이 조선의 사립학교라고 한다면 '복례문'의 현판은 이 문을 들어오는 순간 모든 어려움을 떨쳐내고 열심히 학문에 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만대루를 지나치며

자연스레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병산서원이 오르막 지형에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각 단계별로 계단이 이어지는 구조이다. 입구인 복례문에서 누각인 만대루를 통과할 때에도 위 사진 속에서처럼 몇 계단을 딛고 올라서야 하는 구조이다. 흙 마당 양 옆으로는 동재와 서재가 배치되어 있음도 알게 된다. 우리나라 서원의 기본배치는 그대로 따르고 있는 셈이다. 동재와 서재 마루에 방문자들이 적절히 나누어 앉아 있는 모습이 옛날 유생들의 생활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두 그루의 나무도 인상적이다. 덕분에 마당이 휑하지 않고 적당하게 자연미가 살아난다. 병산서원 현판이 걸린 사진 속 건물인 입교당에도 몇 계단을 딛고 올라서야 함은 이제 당연하리라.   

병산서원 현판

그러고 보니 오늘 서원엔 제법 많은 학생들이 모였다. 부디 많은 것을 배우고 나가야 할 터인데... 아시는 분들도 많을 것인데 병산서원은 사액서원으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내어 걸린 저 액자가 바로 지나온 역사를 말해주는 셈인가? 병산서원 현판 뒤로는 입교당이라는 별도의 건물 현판이 보인다. 입교당 계단을 오르기 전, 좀 전에 지나쳐 온 곳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이 자연스런 행동에 큰 의미가 숨어 있을 줄은 처음엔 짐작하지 못했다. 뒤를 돌아 입구 쪽을 바라다본다. 문득 성큼 다가서는 것이 있다.   

만대루

드넓은 형태의 만대루! 그 누각 기둥 사이로 드러나는 신비가 있지 않은가? 바로 흘러가는 낙동강이요, 에워싸고 있는 병산이라 또한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흙마당에선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입교당엘 올라서야 비로소 보이는 장면인 것이다. 이번엔 한껏 다가서게 된다. 자세히 보면 만대루의 기둥들은 통나무를 그대로 살려서 계단을 만들었고 또 휘어진 그대로 누하 기둥도 삼았다. 초석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을 그대로 한껏 품에 안은 모습 아닌가? 가로로 일곱 칸 규모 만대루의 시원스러운 모습은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을 것임에 틀림없겠다. 공부하다 지친 유생들이 휴식을 취하던 곳이 바로 만대루이다. 시심에 취해서 한 수 시도 읊조리고 했을 것이다. 눈 앞에 유유한 낙동강을 굽어보면서 또 우뚝하니 솟은 병산을 올려다보면서 말이다. 듣자 하니 200여 명을 수용하고도 남았다 하고, '만대'는 두보의 시, '백제 성루' 중 '푸른 절벽은 저녁 무렵 마주하기 좋으니'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라 한다. 

입교당의 뒷 모습

입교당 뒤로는 제향영역이다. 제사를 지내고 이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내삼문을 열고 들어서면 서애 류성룡과 그 셋째 아들의 위패를 모신 존덕사 사당이 있고, 사당은 신성한 공간이라 내삼문 좌우로 담당을 둘렀다. 경사진 지형의 가장 높은 곳에 사당을 배치한 구조인 것이다. 한편 강학 공간을 검소하고 단아하게 꾸민 데 비해 이곳은 단청도 하고 태극문양으로 장식하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사당과는 울타리가 별도로 구분한 전사청이 우측으로 있는데, 이곳은 평소에 제기와 제구를 보관하는 곳이다. 

강학 영역.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 는 뜻의 입교당은 원장과 유생들이 모여서 강론을 했던 즉 공부를 했던 곳이다. 강당은 서원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동족 방인 명성재는 원장(스승)이 기거하던 곳이며, 서쪽 방인 경의재는 교수와 유사들이 기거하던 곳으로 오늘날의 교무실에 해당한다. 입교당에서 만대루를 바라보면 좌우로 동재와 서재가 있는데, 유생들이 학문을 닦으며 기거하던 곳이다. 서재의 작은 방은 장서실로 책의 보관을 위해 온돌을 놓지 않고 마루를 깔았다고 한다. 

달팽이 뒷간

서원 밖에 있는 화장실 모습이다. 지붕이 따로 없이 진흙 돌담의 시작 부분이 끝 부분에 가리도록 한 열린 뒷간인 셈이다. 일꾼들이 사용했던 곳으로 사적 제260호로 지정(1977년)되어 있다. 

류성룡 선생이 목백일홍을 좋아했다고 한다. 해서인지 병산서원의 이곳저곳엔 배롱나무 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입구에 조성된 드넓은 정원도 자연과의 일치가 돋보이는 병산서원과 닮아 있었다. 안동 여행? 하회마을만 보고 가서는 왠지 섭섭할 것 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