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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종묘와 사직단 그리고 참성단과 환구단, 나라의 번영을 기원하다

제사를 지낸다는 건 무엇을 말함인가? 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한 집안의 제사라 함은 정해진 날짜에 후손들이 혹은 남겨진 가족들이 모여서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음식으로 상차림을 하고서 돌아가신 분께 절을 올리는 간단한 행위를 말함이다. 물론 고인을 추모하는 것에 더해 명복을 빌고 또 자신들의 앞날에 복을 내려주실 것을 기도하는 소망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국가에 있어 제사의 의미는 무엇이고 또 어떠한 기원이 있는 것인가? 오늘은 나라의 제사에 대해 고찰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여러분은 어떤 곳을 제일 먼저 떠올리시려는지?  

종묘 정전

조선시대에는 돌아가신 왕과 나라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국가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했다. 때문에 제사를 지내는 장소인 종묘와 사직단은 조선왕조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실로 종묘사직이 흔들리는 일이 일어나면 절대 안 되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 조상들은 옛날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왔다. 신이 하늘이 인간의 모든 것을 주관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중대한 일이 있을 때마다 단을 쌓고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이 바로 좋은 예인 것이다. 돌아 가신 왕들의 제사를 지내는 종묘. 조선왕조도 당연히 나라의 발전과 번영을 기원하며 제사를 올렸는데, 우선 돌아가신 왕들에게 그리고 나라의 신에게 올리는 제사로 구분하여 지냈다. 돌아가신 왕들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려고 지은 곳을 '종묘'라고 한다. 종묘는 정전(국보 제227호)과 영녕전(보물 제821호)으로 나뉘는데, 정전은 돌아가신 5대조까지 임금의 위패와 훌륭한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모두 49분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정전의 서쪽에 위치한 영녕전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4대 조상과 정전에 일단 모셨다가 옮겨진 왕과 왕비, 왕이 되지 못하고 죽었지만 추후 왕과 왕비의 칭호를 받은 이들의 신위를 모신 곳으로 모두 34분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정전의 뜰 앞에는 조선시대의 훌륭한 신하 83명의 위패가 모셔진 공신당이 있으며, 전사청, 향대청, 칠사당 등의 부속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특징적인 것은 정전이 하나로 구성된 목조건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건물이란 점이다.

종묘 영녕전

정전과 영녕전은 지붕의 높이나 기둥의 굵기 등 그 규모면에서 차이가 있는데, 이는 그곳에 모신 분들의 업적이 높고 낮음에 따라 정전은 크게, 영녕전은 조금 작게 지었기 때문이다. 정전이 근엄하다면 영녕전은 단정한 느낌이다. 종묘의 건물은 자연과의 합일에서 나온 '한 일'자 모양의 건물로, 정면에서 보면 본 건물 25칸의 길고 곧은 선들이 인상적이며 쌓아올린 단과 지붕의 수평선이 안정적으로 보인다. 이는 중국은 물론 서양 건축물에서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건축양식인 것이다. 조선시대 종묘 정전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과 음력 12월에, 영녕전에서는 봄과 가을 그리고 음력 12월에 일정한 날을 따로 정해 제사를 지냈다. 백성을 위한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 나라의 운명을 '사직'이라고 한다. 이는 '땅의 신'과 '곡식의 신'을 말함인데, 옛날에는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될 때에는 반드시 사직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 그 나라와 존망을 같이 했던 것이다. 땅과 곡식이 없으면 즉 백성을 배부르게 할 수 없다면 나라의 존재 이유가 없었으므로 왕이 나라를 세우면 사직단을 만들어 백성을 위한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우리역사에서 처음으로 사직단을 세운 왕은 신라 선덕왕이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의 사직단은 1395년 조선 태조가 한양을 새 도읍지로 정하고 궁궐과 종묘를 지을 때 함께 세운 것인데, 일제 강점기 때에는 공원으로 격하되는 불운도 겪었던 적이 있었다(사적 제121호). 음력 1월 초순, 2월과 8월 초순에는 제례를 지내 나라와 백성의 평안과 풍년을 빌었고 또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와 가뭄 등이 들었을 때에도 제사나 기우제를 지냈다. 단군왕검을 기리는 참성단. 해발 469미터의 마니산에 자리 잡은 참성단은 단군 왕검이 봄과 가을에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고 전해지는 제단이다. 천연 그대로의 돌로 쌓은 제단으로 여러 번 고쳐 쌓았기 때문에 본래 모습을 제대로 찾아볼 수가 없다. 일제 강점기에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가 생기면서 민족의 성지로 주목받게 되었다. 사적 제136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곳은 한편으론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가 센 곳(생기처)으로 알려져 많은 등산객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황제가 제사를 지낸 환구단. 유교적 의례에 따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단을 일컫는 환구단을 세운 이는 고종으로, 대한제국 황제 즉위를 앞두고 쌓은 단이다. 1897년 10월 11일 고종은 신하들과 함께 환구단에 나아가 하늘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 뒤 황제 즉위식을 올리고 대한제국임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운명이란 그리 길지가 못했다. 1913년 일제는 환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철도호텔을 지었다. 현재 이곳에는 태조의 신위를 모신 황궁우와 악기를 닮은 석고(돌로 된 북) 세 개가 남아 있을 뿐이다. 옛날의 환구단은 하늘을 상징하는 뜻으로 제단의 형태를 둥글게 만들었다. 때문에 '원구단'이라고도 불렀다(사적 제157호). 결국 한 집안의 제사이던 한 나라의 제사이던 자신들의 당면한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도록 기원한다는 점은 과거나 현재가 다를 수 없을 것이다. 그 형식이나 방식은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가감될 수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