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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네버엔딩 백제 금동대향로 스토리

"이 작은 공간에 100가지의 도상이 들어 있습니다. 25개의 산이 네다섯 겹으로 첩첩산중을 이루고, 6곳의 솔숲, 12곳의 바위가 펼쳐져 있는 진경이 보이시나요? 산봉우리에는 피리, 배소, 비파, 거문고, 북 등을 연주하는 5인의 악사와 39마리의 현실세계의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바로 백제인들이 생각하는 신선의 세계, 영원불멸의 세계입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이신 유홍준 교수님의 말씀을 전해 들으면서 "언젠가 직접 찾아가 봐야지..." 했던 게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그러나 모처럼 방문한 국립중앙박물관은 휴관 중이었다. 코로나 탓이었다. 뿐만 아니라 진품은 국립 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요즈음이 어떤 세상인가? 사전에 전화로 제대로 문의만 했더라면 이런 차질은 없었을 텐데.

아무튼 백제인들이 꿈꾸던 영원불멸의 세계가 곧 백제 금동대향로 라는 설명인데 연꽃 봉우리에 올라앉은 봉황이며, 25개나 되는 산으로 빙 둘러쳐진, 거기에 5인의 악사와 39마리의 동물들은 다 무슨 뜻인가? 그리고 숨겨진 12개의 디테일들은 또 뭔 말인지?

우리 문화유산을 사랑하시는 여러분들을 위해 골목남이 얄팍하나마 공부한 부분을 지금부터 공유하고자 한다. 우선 향로를 네 부분으로 나누면 보기가, 이해하기가 좀 수월해진다. 

  1. 봉황 부분 
    봉황은 천하가 태평할 때 나타난다고 하며, 봉황이 밟고 있는 알은 백제 시조인 부여씨의 난생설화를 말한다는 주장이 있다. 대향로의 가장 위에서 마치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날개를 펼친 봉황은 하늘을 표현한다고 한다. 향을 피우면 여의주를 품은 봉황의 가슴(2곳)과 뚜껑(10곳)에 만들어진 모두 12개의 구멍으로 연기가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2. 뚜껑 부분
    향로의 구실을 하려면 당연히 열고 덮는 뚜껑도 있어야 하는 법. 산봉우리와 계곡은 물론 마치 천상의 음악이라도 연주하는 듯한 악사들의 모습과 동식물들도 보인다. 이는 곧 지상을 나타내는데, 불로 장생하는 선인들이 사는 도교의 이상향, 박산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즉 향로의 윗 부분은 도교적 사상을 의미)

  3. 몸통 부분
    향 심지를 꽂는 부분일 텐데 물고기 등의 장식이 새겨진 연꽃이 떠 받치는 모습이다(즉 향로의 아랫부분은 불교적 사상을 의미).

  4. 대좌 부분
    연꽃이 피어나는 부분은 향로의 다리 부분으로 용의 입이 장식되어 있다. 용은 물에 사는 상상의 동물이다. 그 용의 입에서 피어나는 연꽃과 연꽃에 표현된 동물들 역시 물과 관련된 것으로 모두 수중의 세상을 나타낸다. 나아가 용이란 물의 수호신이자 왕을 상징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악취를 제거하고 부정을 없애기 위하여 향을 피우던 도구, 향로~ 이상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임금의 덕에 힘입어 나라가 융성해져 봉황이 날아오르는 태평성대를 구가한다" 정도가 아닐까 싶다. 용과 봉황을 위아래 두어 음양의 조화를 꾀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백제 금동대향로

 

백제인의 뛰어난 금속공예 기술과 예술성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걸작 중의 걸작이라는 이 향로는 지난 1993년 12월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절 터(백제나성 부근)에서 출토되었다. '부여 5경' 중 하나인 <능산리 고분군>의 모형관 바로 옆 논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곳은 원래 절터로 전형적인 백제의 가람배치인 1탑 1 금당식 구조의 공방으로 추정되는 자리라고 한다. 그리고 이 절의 목탑 자리에서는 화강암으로 만든 사리감이 발견됐는데, 이 사리감에는 "백제 창왕(위덕왕, 성왕의 아들) 13년(567)에 공주가 사리를 공양했다"는 내용의 글씨가 씌어 있어서 이 절이 백제 왕궁의 원당 사찰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3권). 아마도 이 점이 추후 국보로 지정되는데 일정 부분 작용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모름지기 터가 좋아야 한다는 말씀인지? 

♥백제 금동대향로의 제작 시기?
'통치자의 백제금동대향로' 국립 부여 박물관측의 설명자료에 의하면 "백제 창왕(위덕왕)은 아버지 성왕과 함께한 관산성 전투(554년)에서 부왕이 전사하는 등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즉위 초 왕권의 약화를 딛고서 선진문물의 수용에 주력하여 문화, 종교적으로 절정기를 이루어 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만들어 낸 하나의 상징물은 아니었을까?"라며 대략 6세기 후반대로 추정하고 있다. 

♥백제 금동대향로 요점 정리!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 높이 61.8cm, 무게 11.85kg, 국보 제287호, 국립 부여박물관 소장 중

스마트 폰 속에서 언제라도 또 검색하면 다 나오니 당연시 하면서도 정작 제대로 몰랐던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서 떠나는 골목남의 방방곡곡 여행 톡 Talk! 다음 편은 무엇이, 어디가 될지...


♥백제 금동대향로 찾아가기
서울 광화문(동화면세점 앞, 자가용 출발) 기준 약 170km, 3시간 소요 예상서울 남부터미널 승차(시외버스) 시 부여 시외버스터미널 하차(2시간 10분 예상), 도보로 약 10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