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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공예의 왕국, 그 도자기 색의 비밀은?

우리나라가 '공예의 왕국'이라는 사실, 특히 어떤 부분에서 그리 말할 수 있을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삼국시대의 금속공예, 고려시대의 상감청자와 나전칠기 그리고 조선시대의 목공예와 백자를 나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미술사를 빛낸 걸작들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공예의 꽃'은 도자기라고 하는 의견이 많은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를 처음으로 만든 것은 중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 기술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하여 세계 도자(도기와 자기) 역사에 분명한 발자취를 남기지 않았는가? 고려 시대에 들어와 장인들은 청자에 상감 무늬를 넣은 이른바 상감청자를 개발해 중국 청자와는 다른 도자기의 지평을 열었고, 조선 시대에 와서는 분청사기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내었다. 백자의 경우도 그 시작은 중국이었지만 조선백자는 중국 도자기에서 찾아볼 수 없는 순백의 아름다움과 소박하면서도 이지적인 멋을 한껏 풍긴다. 또 조선 시대의 도공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사회에 새로운 자기문화를 열기도 했었다. 자~ 오늘은 빼어난 우리나라 도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 이 매병(매화 꽃이 그려진 병)은 12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대표적인 고려청자이다(국보 제68호로 지정). 어깨 부분이 넓고 아래로 내려가면서 아주 날씬한 곡선을 그리고 있고 또다시 밑부분에선 살짝 넓어져 전체적으로 보면 아름답고도 아주 안정감이 있는 꽃병이다.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 도자기이다. 짐작하건대 이 매병을 사용했던 사람은 굉장히 귀족적이고 화려한 생활을 했던 왕족이나 고관대작의 신분이었을 것이다. 도자기 표면에 새겨진 학과 구름무늬는 율동감이 넘치는데, 그 이유는 원안의 학은 위로 원 밖의 학들은 아래로 향하게 엇갈려 그려서 보는 이의 시선을 위아래로 옮기게 했기 때문이다. 고려청자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상감이란 무늬를 새겨 넣은 방법인데, 일단 모양을 만든 다음 그릇 표면에 원하는 무늬를 새긴 뒤 백토(흰 흙)나 자토(밤빛 흙)로 무늬를 메우는 방식이다. 그런 다음 그릇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고 유약을 발라 가마에서 구우면 백토는 흰색으로, 자토는 검은색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상감기법은 이미 중국에서 시작된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삼국 시대부터 사용했던 것인데, 유독 우리나라 상감청자가 유명한 것은 도자기에다 상감기법을 응용했다란 점 때문이다. 상감청자는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독특한 우리나라만의 기법인 것이다.  
분청사기와 백자. 청자에 쓰던 회색이나 회흑색 흙 위에 흰 흙을 덧칠하고 그 위에 유약을 입힌 자기를 분청사기라 말하는데, 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가는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백자를 만들고 싶지만 백자에 쓰이는 흙을 만드는 기술이 부족했기때문에 나온 기법일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분청사기를 만들던 장인들이 일본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선 그 전통이 끊기고 만다. 분청사기를 거쳐 드디어 백자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얻게 되자 조선의 도공들은 눈처럼 하얀 자기에 중국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불어넣었다.  
도자기 색의 비밀. 도자기의 색은 그릇을 구울 때 산소가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흙과 유약에 철분이 얼마나 포함되었느냐에 따라서 달라 진다. 도자기를 구울 때 산소가 많이 공급되면 흙이나 유약에 있는 철분이 모두 산화되고 결국 그릇은 갈색을 띠게 된다. 장작불로 구운 빗살무늬토기가 갈색이나 흙갈색을 띠는 이유와 마찬가지 원리인 것이다. 이후 기술이 발전하면서 산소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빈 틈 없이 막힌 가마를 이용해 높은 온도로 굽게 되었다. 청자와 백자는 모두 이런 방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고려 시대 사람들은 푸른색 청자를 좋아했고, 조선 시대 사람들은 흰색 백자를 즐겼듯이 시대마다 좋아하는 도자기의 색이 모두 달랐던 것이다. 이른바 트렌드의 변화인 셈이겠다. 고려청자의 빛깔은 꿈결 같은 아득함이나 끝없이 펼쳐진 세계를 연상하게 한다면, 조선백자는 흰색이 주는 순결함과 검소함을 연상하게 된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현실의 세계보다는 다음 세계 즉 내세를 꿈꾸었다. 모든 사물이 맑고 깨끗한 기쁨이 넘치는 다음 세계를 청자에 표현한 것이었다. 이에 비해 조선시대 사람들은 성리학의 세계와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성리학은 무엇보다도 검소, 질박, 결백을 생활 속의 중요한 가치로 추구하는 학문이므로, 조선시대 사대부들에게 백자의 면모는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행이나 트렌드를 따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