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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저항의 역사 강화도

강화도는 한강물이 서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그런데 강화도는 제주도나 거제도처럼 절해고도의 느낌을 주는 곳은 아니다. 서울과 인천에서 비교적 근거리이고, 육지와 섬 사이가 불과 200~30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아 마치 강을 건너는 느낌 정도이다. 더군다나 강화대교나 초지대교가 건설되면서 연육화된 지도 꽤 되었다. 그럼에도 강화도가 마치 아득한 섬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다사다난했던 또 파란만장했던 지난 역사를 온몸으로 감내해왔던 자취들이 아직도 여기저기 진하게 배어있기 때문이리라. 역사 속에서 강화도는 고려와 조선의 도읍이었던 개경과 한양으로 들어오는 입구여서 도읍으로 밀고 들어오는 수많은 외적의 침입을 숙명적으로 받아야 했다. 바다를 그리고 물을 건너오는 외적에게 이곳이 점령당하면 곧바로 나라의 심장부가 짓밟힐 처지였으니 말이다. 또 북쪽의 오랑캐가 내려왔을 때는 이 섬을 보루 삼아 끈질긴 항쟁을 벌이기도 했다. 강화도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 역사의 축소판 내지는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의 역사, 시련의 세월 그 와중에서 팔만대장경과 고려청자를 완성한 곳이 다름 아닌 강화도였다. 멀리서만 바라볼 수 없는 섬, 강화로 달려가 본다.
한양으로 가는 바닷길을 지켜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 조선은 강화도를 요새로 만들기 위해 해안선을 따라서 성을 쌓고, 12곳에 진과 보를 설치하고 모두 53곳에 돈대를 구축했다. 바닷길로 쳐들어오는 외적을 방어하기 위함이었다. '진'은 오늘날로 치자면 대대병력의 주둔지를 말함이고, '보'는 중대 병력이 머무르던 곳이고 '돈대'는 조그만 요새와 같은 곳이다. 조선 말기에는 서양의 군함들이 강화도를 드나들면서 한양까지 쳐들어 오려고 했다. 그때 이곳에서 조선의 군사들이 프랑스와 미국 함대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1866년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 저항의 역사, 그 현장을 찾아가 는 강화도 답사여행을 떠나 보자.   

올려다 본 참성단

우리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땅. 강화도는 바다와 갯벌로 둘러 싸인 섬이면서도 내륙 깊숙이 이동할 수 있는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과 가까워서 아주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남한에서 가장 큰 북방식 고인돌인 부근리 고인돌이 이 시대의 역사를 말해주고, 단군이 하늘나라에 제사를 지냈다는 참성단이 있어 민족의 성지라고도 한다. 고구려 때는 강화도를 혈구진이라 부르며, 남진 정책의 중요한 거점으로 삼았고,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에는 중국으로 가는 전진 기지였다. 그 후로도 강화는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참성단 안내판

마니산 참성단. 강화도 남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해발 468미터의 마니산 꼭대기에는 언제 누가 쌓았는지는 모르지만 제단이 있다. 전설에는 단군이 나라를 세운 지 51년 되던 해에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 지점인 서해 바다 외딴 섬에 제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이 산이 바로 마니산이라고 한다. 마니산은 마리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말은 우두머리를 뜻한다. 또 마니산은 불교식 이름으로 '더러운 것을 맑게 하고 재앙을 없애 준다"란 뜻도 있다고 한다. 제단의 아래쪽은 둥근 원이고 위쪽은 네모난 모습이다. 여기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고 여긴 우리 민족의 사상이 담겨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제사 지내는 사람까지 합하면 천지인이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래서 개천절이 되면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참성단에 모여 제사를 지낸다. 
삼랑성. 강화도 정족산은 산 가운데가 솥단지처럼 움푹 파여 있고, 우뚝 솟은 봉우리가 솥에 달린 세 발처럼 생겼다. 그래서 솥 정자, 발 족자를 써서 정족산이다. 이 산에는 단군의 세 아들 부소, 부우, 부여가 쌓았다는 성이 있는데, 이 삼랑성 안에는 강호도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전등사가 있고,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산 사고도 있다. 
강화산성. 고려 고종이 몽고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면서 내성, 중성, 외성 세 겹으로 쌓은 성인데, 지금은 내성만 남아 있다. 피난지의 수도였으나 도성의 격을 갖추어 4대문도 만들었는데, 몽고군에 항복을 하면서 대부분 허물어졌다.

이상으로 오랜 저항의 역사를 간직한 섬, 강화도에 대해 부분적으로나마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가까운 섬으로, 상기해야할 역사의 섬이 바로 강화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