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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신라 천 년의 무덤 공원, 대릉원

신라의 옛 수도 경주만큼 신비스러움이 감도는 곳도 없을 것이다. 시내 한 복판에 동산처럼 우뚝 솟은 왕릉이 여기저기에서 눈길을 잡아 끈다. 타임 슬립으로 금방이라도 시공간을 초월하여 천 년 전 경주로 돌아갈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드니 말이다. 실로 천 년이란 시간의 흠을 두고 옛사람과 현대인이 교감을 나누는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신라 왕릉은 초기에 대부분 도읍지인 경주 한복판에 조성되었다. 후기로 가면서 풍수지리설에 따라 명당을 찾아 차츰 외곽으로 자지를 잡으면서 다양한 곳에 흩어지게 되었다. 신라 천년의 역사 속에 모두 56명(평균 재위 기간 17년)의 왕이 존재했으니, 무덤의 수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각 무덤들의 주인이 정확히 어떤 왕인지를 알 수가 없다란 사실이다. 신라 왕들의 무덤 앞에는 대체로 비석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외가 있다면 태종 무열왕릉(비석)과 흥덕왕릉(비석 파편)의 사례를 들 수 있겠다. 때문에 신라 왕릉은 조선왕릉에 비해 더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또한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경우도 있다. 땅에만 무덤이 있는 게 아니란 사실 말이다. 죽어서도 동해바다 왜구들로부터 신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조성된 해중릉 대왕암의 사례도 있다. 대부분 <삼국사기>의 기록과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 추측만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신라 왕릉이다. 방방곡곡 여행톡TALK은 오늘, 천 년의 역사가 깃든 신라 왕들의 무덤 공원을 찾아 고도 경주로 가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역사유적지구로 말이다.

경주 대릉원 안내도

신라 천 년의 역사, 경주 대릉원(사적 512호, 5~6세기 축조 신라 왕의 무덤). 경주 대릉원은 경주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잘 정리된 잔디 옷을 걸친 23기의 봉분이 무리를 지어 있어, 마치 왕들이 사후에 회합의 자리라도 마련한 느낌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묘지보단 '무덤 공원'이란 표현이 적절하지 싶다. 이 대릉원에서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는 건 미추왕릉(262~284년 재위, 신라 제13대, 최초의 김씨 성/높이 12.4m, 지름 56.7m)뿐이다. 능 앞에 대나무 밭이 있어 별명이 '죽릉'이기도 하다. 전해오는 이야기 한 토막 하자면, 이사금 시절 이서국 사람들이 쳐들어 왔는데 어디선가 귀에 대나무 잎을 꽂은 군사들이 나타나서 순식간에 적을 무찌르곤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다음날 미추왕릉 앞에 대나무 잎이 가득 쌓여 있었다 전해진다. 한편 미추왕릉 앞에는 돌로 만든 네모난 탁자가 있다. 왕의 혼이 나와 노니는 곳이라 해서 혼유석이라 부른다. 유일하게 무덤 내부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천마총(높이 12.7m, 지름 47m)이다. 지난 1973년 황남대총을 발굴 하기 전 일종의 예행연습으로 발굴작업을 하다가 우연찮게 발굴된 무덤이다. 앞서 신라의 무덤은 주인을 알 수 있는 표시가 따로 없어 그 주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는데(이때 '총'이라 부른다), 무덤에서 출토된 물건들을 보면 그 신분을 대략 짐작(왕의 경우는 '릉'으로, 왕보다 낮은 귀족의 무덤일 경우엔 '묘'라 부른다)할 수도 있다. 이 무덤에서 나온 대표적인 유물인 천마도(자작나무 껍질을 여러번 겹치고 누벼서 만든 말다래에 그려진 그림으로, 마치 하늘을 나는 말과 같은 동물이 등장해 붙여진 이름)의 이름을 따서 천마총이라 부르는데, 호박 크기 정도의 돌로 둘러싼 큰 방으로 조성되어 있다. 왕(지증왕으로 추정)의 시신이 놓여 있던 자리와 화려한 유물들의 복제품을 발굴 당시의 모습으로 전시하고 있다.

대릉원 전경

한편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은 거의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당시 신라의 금세공 기술력을 보여주는 단면인 것이다. 앞면에는 한자 '출'자 모양의 장식이 있고, 뒷면에는 사슴뿔 모양의 장식으로 된 신라 금관(국보 제188호, 높이 32.5cm)이 발견되기도 했다. 경주 대릉원에 가면 필히 방문해야 할 장소가 지하 왕궁, 천마총인 것이다. 신라인들의 복장을 하고 기념사진 촬영도 가능하다. 두 개의 봉분이 이어져 있는 대릉원에서 가장 큰 무덤은 황남대총이다. 높이 23미터에 남북 길이 120미터 그리고 동서 길이 82미터의 엄청난 규모이다. 북쪽은 여자의 능으로 남쪽은 남자의 능으로 부부의 합장릉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곳에선 특이하게도 로마에서 온 유리그릇이 출토되었다. 바다를 통해 신라와 유럽의 교류가 있었단 하나의 증거가 아닐까 한다. 경주 대릉원 이외에도 처음으로 금관이 발굴된 금관총(금관총 금관, 국보 제78호), 금방울이 발굴된 금령총, 화려한 신발이 발견되었다고 식리총, 발굴 당시 스웨덴 왕세자(고고학자)가 와서 보았고 봉황무늬 금관이 나왔다고 서봉총 등 다양한 이름을 지닌 무덤이 있다. 수많은 무덤엔 또 수많은 사연들이 있다고 할 것이다. 비록 천 년의 왕국은 사라졌지만 거대한 무덤들이 남아 있어서 지나온 역사를 증명하고 있으니, 신라 왕릉은 당시 사람들이 후세에게 남겨준 일종의 타임캡슐이지 싶다. 조상들의 지혜와 안목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경주 대릉원을 방문했다면 다음 코스로는 인근의 국립경주박물관에 들러 관련 유물들을 직접 찾아보는 것도 훌륭한 문화유산 탐방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