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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신라의 천문관측대 첨성대

높이가 약 9.17미터로 전체적인 모습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병 모양이다. 기단, 몸체, 정자석의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맨 아래 지면에는 사각형 모양으로 쌓은 2단의 기단이 있다(1단은 얼핏 보이지 않는데 자세히 보면 지면의 흙에 가려진 것을 알 수 있다). 그 기단 위에 둥글게 둥글게 돌을 쌓은 부분이 몸체이다. 몸체 위에 한자의 정자 모양 돌이 정자석이다. 이 첨성대의 몸체를 옆에서 보면 우아한 곡선미를 그리는데, 신라인들이 이렇게 쌓은 이유는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또한 제일 상단의 정자석까지 어떻게 올라갔을까? 추정하건대 먼저 남쪽으로 나있는 입구 자 모양의 창(창문)에 사다리를 걸친다. 사다리를 딛고서 올라간 다음 창(창문) 안으로 들어간다. 다시 그 안에서 내부 사다리를 통해 위로 올라간다. 또는 내부에 튀어나온 부분을 밟고서 정자석까지 올라간다. 그렇다면 첨성대 내부 밑바닥은 어떠했을까? 완전 빈 공간은 아니었지 싶다. 결국 위로 올라가려면 디딤돌이 필요했을 테고 그렇다면 굳이 비워두기보단 흙이나 돌 등으로 일정 높이까지 예컨대 창(창문) 부근까지는 돋워 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남겨진 문헌이나 기록이 없어 단지 추정만 할 수밖에 없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오늘은 국보 제31호 첨성대를 찾아가 보도록 한다. 오래 전 수학여행 때 잠시 스쳐간 아스라한 기억 속의 그곳, 그러나 지금은 당당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역사유적지구로 말이다. 서울 광화문에서 약 4시간(거리는 335km) 차를 몰아서 도착한 경주 황남동. 대릉원 정문 주차장에서 도로를 건너자마자 사람들의 발길은 한 방향이다. 그 시선이 집중되는 지점에 우뚝하니 서 있는 게 바로 신라 27대 선덕여왕(?~647) 재위 기간에 창건된 첨성대이다. 다가갈수록 그 위용이 장엄하다. 별을 보기 위해 돌로 높게 쌓은 천문관측대인 첨성대를 이리 궁궐에 가깝게 세운 까닭은 또 무엇일까? 저 높은 토함산(745m)도 아니고 남산(495m)도 아닌 곳에. 궁궐 가까이에 세웠던 까닭에 주변의 많은 건물을 의식해서 자연스레 높이 쌓았을 것이다. 첨성대가 천문 관측대라고 주장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첨성대를 이루는 돌과 단의 수가 달력과 별자리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첨성대를 이루고 있는 돌의 숫자는 약 365개이다. 둥글게 쌓아 올린 몸체 부분은 27단인데, 선덕여왕이 신라 27대 왕이란 점과 일치한다. 여기에 꼭대기의 '정' 자 모양 돌을 합치면 28단이 되는데, 이는 '28수'라는 별자리를 뜻한다(28수 별자리를 7개씩 나누어 동, 서, 남 그리고 북 사방에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몸체 아래의 2층의 기단부를 합치면 30단이 되는데, 이는 음력 한 달의 날 수와 같다. 첨성대는 또한 가운데 창문을 기준으로 윗부분 12단과 아랫부분 12단으로 나뉘는데, 이는 각각 1년의 12달과 24절기를 뜻한다. 즉 첨성대의 숫자는 1년 365일, 12달과 동양의 기본 별자리 28수와 같다. 첨성대의 구조는 우주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란 생각에 이른다. 

신라의 천문관측대, 첨성대

옛날 사진 중에는 첨성대를 방문한 학생(검정색 교복을 입고 있다)들이 어찌 된 영문인지 첨성대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혹은 중간에 여럿이 달라붙어서 기념 촬영을 한 사진도 목격할 수 있다.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인데. 위 사진을 보다시피 요즘의 첨성대 둘레에는 커다란 보호장벽이 둘러쳐져 있다. 물론 손으로 만져볼 수 없어 피부로 느낄 수없다는 밋밋함은 있지만 약 1,380여 년된 소중한 문화유산임을 고려하면 당연한 조처이겠다. 높이가 10미터가 채 안 되는 것을 두고 실망할 필요도 없겠다. 2020년 현재 동양에 존재하는 천문대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 바로 첨성대이다.


첨성대 주변 가볼 만한 곳 : 대릉원, 계림, 반월성, 경주교촌, 월정교, 동궁과 월지